<편집자주> 검찰이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천명하고 있지만,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회지도층 피의자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검찰은 강압수사는 절대 없었다며 선을 긋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자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 보호에 만전을 기해 극단적 행동을 예방하라’는 내용이 담긴 지침을 최근 일선청에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즉, 검찰 스스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검찰 수사 도중 피의자나 참고인이 자살한 사례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해외자원개발 융자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완종(64·사진)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9일 유서를 남기고 잠적한지 10시간여 만에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이완구 국무총리 등이 나서 부정부패와의 척결을 선언하며 사실상 청와대 하명사건으로 시작된 검찰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에 무리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전 정권 인사와의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부담을 느낀 성 전회장이 벼랑 끝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망 이후 또 다시 검찰수사 선상에 오른 대상이 사망에 이르자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해외자원개발 비리를 수사해 온 검찰의 수사에도 일정부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찰은 성 전회장이 9일 오후 3시32분경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인근 등산로에서 30m 정도 벗어난 지점의 한 나무에 목매 자살한 채 경찰 탐지견에 의해 발견됐다고 밝혔다.
800억원대 자원개발사업 융자금 사기와 25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받은 성 전회장은 3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속영장이 청구된 6일부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예정된 9일까지 3일동안 큰 심적 압박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성 전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다”면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검찰은 경남기업의 자금관리담당 임원과 성 전회장의 부인에 대한 조사를 통해 성 전회장의 혐의를 상당부분 확인 뒤 6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히 성 전회장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두고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울분을 쏟아냈다.
실제 성 전회장은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석유 및 가스탐사 사업 4건에 653억원을 투자했는데, 321억원은 성공불융자로 지원받고 자체자금으로 조달한 332억원은 모두 손실 처리했다"며 "경남기업은 전 정권 시절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닌 피해자"라고 읍소했다.
또 성 전회장은 'MB맨'이라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전 정부가 경남기업을 일방적으로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켜 회사 부실이 심화됐다"며 "2007년 18대 대선 한나라당 후보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노력했고 지난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MB맨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성 전회장 잠적 이후 경찰과 협조해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검찰은 성 전회장이 끝내 주검으로 발견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9일 성 전회장 시신이 발견된 후 기자들과 만나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수사를 진행했고 또 8일 고인께서 직접 기자회견까지 했기 때문에 오늘 법원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해서 본인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수사를 받던 중에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또 성 전회장 잠적 이후 10시간이 지나도록 행방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 지난해 검·경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주검으로 발견된 유 전 세모그룹 회장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검경의 추적을 피해 달아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 전회장은 지난해 6월 순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또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번째 검찰 조사 대상자의 죽음이 발생하자 검찰도 충격에 휩싸였다.
앞서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포함한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검찰조사를 받은 최모(45) 경위는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최 경위는 경기도 이천시의 고향집 부근 도로변에서 자신의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방위사업 비리와 관련 검찰조사를 받던 방사청 관계자 A씨가 올 1월 서울 한강 행주대교에서 투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방사청 사업부장이자 방산업체 고문인 A씨는 방위사업비리 합수단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두 차례 조사를 받았고 추가 조사를 앞둔 상황에 투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 전회장의 죽음으로 자원개발사업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이완구 총리 등이 나서 부정부패와의 척결을 선언한 이후 사실상 정부의 하명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에서 또 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서 정부에 대한 책임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에서 "국정운영의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고질적 부정부패와 흐트러진 국가기강"이라며 "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검찰은 자원개발사업 첫 수사대상으로 경남기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대기업 수사로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의혹을 조사 중에 있다. 또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비리와 동국제강의 비자금 의혹, 포스코 거래사인 코스틸 박재천 회장의 배임 및 횡령 건을 수사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검찰의 수사에 애초에 무리한 기획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검찰은 점차 수사 폭을 확대하고 있다.
검찰 조사 중 자살한 피의자나 참고인은 최근 5년간 55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이 지난해 10월2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 조사 중 자살한 피의자가 ▲2010년 9명 ▲2011년 14명 ▲2012년 10명 ▲2013년 11명 2014년에는 7월까지 11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검별로 보면, 서울중앙지검에서 12명이 자살했다. 이어 ▲대구지검 4명 ▲창원지검 2명 ▲울산지검 2명 ▲전주지검 2명 ▲안산지청 2명 등이었다.
자살자 대부분은 피의자 조사를 받은 후 주거지나 인근에서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마약류를 삼켜 자살을 기도해 사망한 경우도 있었고, 구치소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이 의원은 "피의사실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죄인 다루듯 강압적인 수사를 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발언과 태도는 철저하게 개선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CCTV 녹화를 확대하고 수사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조사과정에서 물리적·언어적 폭력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유명인들의 경우 이름 있는 변호인이 선임되고, 수시로 접견도 허용되기 때문에 가혹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결국 가혹행위는 사라졌다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강압적 분위기와 이로 인한 모멸감 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경찰행정학 한 전문가는 "(성 전 회장이) 지금 현재 상황에서 자기가 어떤 제도적이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좌절한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열심히 설명한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실망이나 좌절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억울하고 답답하고 이런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가 당장 헤쳐 나가고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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