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이념적 편향 기술은 역사적 사실을 선정하거나 배제하는 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량을 많거나 적게 해 편향적인 기술을 하기도 한다.
6일 세계일보가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한 이념 편향적 서술 및 분석 사례를 살펴본 결과 8종 교과서 중 6개 교과서에서 6·25 당시 북한군의 서울대병원, 대전형무소, 영광 등의 학살과 관련한 서술은 모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교과서 중 3종은 미군의 노근리 학살과 거창 양민 학살, 국군의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등은 구체적으로 기술하기도 했다. 서술의 편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서술 표현 방식을 달리해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1948년 제3차 유엔 총회 대한민국정부 승인 결의안에는 한반도에서 합법적인 정부로 대한민국이 유일함을 명기하고 있으나 현행 2종의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선거가 실시된(가능하였던)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기술해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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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1인 체제에 대해 소단원에 걸쳐 다룬 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북한에서 우상화를 목적으로 발행된 ‘김일성 전집’의 내용까지 발췌해 실었으나 주체사상이 독재나 우상화에 이용됐다는 비판적인 부분은 아래 작은 글씨로 처리했다. |
분량 배분 등에 대해서는 김일성 1인 체제에 대한 부분을 1개의 소단원을 할애해 설명하기도 하고,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 투쟁 업적으로 치켜 세우는 보천보 전투 역시 소단원으로 분류했다. 주체사상과 자주노선 등의 설명을 위해 노동신문 등 북한의 자료를 그대로 발췌해 다소 과도하게 자료를 선택,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과 일본군‘위안부’ 피해 문제 등의 개별청구권은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임에도 한 교과서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 외무대신 오히라 간에 비밀 회담이 진행되었다. 두 사람의 회담에서는 그동안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청구권 문제가 경제협력 방식으로 타결되었다’고 기술했다.
이념적 편향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집필자가 포함된 학계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연도 등에서 교과서별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사시대 편년과 관련한 내용의 차이다.
구석기 시대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교과서는 2002년 초판이 발간된 7차 국정교과서에 기술된 70만년 전을 인용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A 한국사 교과서는 구석기 시대가 100만년쯤부터 시작됐다고 하고 있는 반면 B교과서에서는 10만년 전 혹은 30만년 전이라고 쓰고 있다. 최대 90만년까지 차이가 나는 셈이다. 또 A교과서의 중학교 판 역사교과서에는 구석기 시대가 50만년 이전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 광개토대왕의 사망연도에 대해서도 광개토대왕릉비에는 412년, 삼국사기에는 413년으로 표기된 것을 교과서마다 다르게 표기하는가 하면 6·25전쟁과 관련해서도 국군의 압록강 진격일을 1950년 10월 26일, 28일로 표기하거나 11월로 표기해 교과서별로 각각 일자가 달랐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학교 현장의 교사들도 내용이 각각 다른 교과서에서 어디까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위주로 가르쳐야 할지 다소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역사교사는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학교가 선택한 출판사 및 집필진이 주장하는 역사 교과서에 따라 배우는 역사가 각각 달라지는 셈”이라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러한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도의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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