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그 다른 무엇>
프로스포츠 등의 프로(pro)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의 약자이다. 직업선수, 전문가는 뜻으로 자신의 기량을 팬 혹은 다른 사람들과 단체 등에게 선보이는 것으로 업을 유지한다.단 1초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을 보일 경우 자칫하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 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비록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축구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우리축구는 그동안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보는 이에 따라 생각을 달리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축구인들과 팬들은 한국이 배출한 최고 스타로 차범근(62)을 꼽는다.
차범근은 만 18살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지금도 50대 이상이라면 잊지 못하는 경기가 1976년 대통령배(박스컵) 말레이시아전이다. 1-4로 뒤진 경기를 차범근이 7분동안 혼자서 3골을 터뜨리며 4-4 동점을 만들었다. 차범근이 스타에서 슈퍼스타로 각인된 순간이었다.
차범근은 공군에서 만기제대한 뒤인 1979년 7월 독일로 떠났다.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는 실력이나 인기, 수입 등 모든 면에서 단연 세계최고였다. 그런 곳에 차범근 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당시 한국축구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호였지만 유럽과 남미국가들의 눈으로 볼 때는 형편없었다.
그런 한국에서 분데스리가가 차범근을 주목하고 데려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차범근은 실력있었다. 그렇지만 그 실력의 배경에는 역시 '프로 다운 무엇'이 있었다.
지금 전하는 짧은 이야기가 차범근의 프로의식을 말해 준다.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뛰고 있던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데뷔하자 마자 돌풍을 일으키자 국민적 관심이 대단했다. 지금으로 치면 류현진 강정호 기성용의 모두를 합친 소식보다 더 국민들은 차범근의 소식 하나 하나에 환호했다.
자연히 우리나라 언론들도 현지 교민과의 전화통화, 외신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차범근 소식 전하기에 바빴다.
당시 모 신문은 거금을 들여 차범근 취재를 위해 축구기자를 독일로 보냈다.
평소 차범근과 잘 알고 있던 이 기자는 자신이 독일로 간다는 사실을 알렸고 "힘들겠지만 안내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차범근도 먼 곳까지 오는 손님(?)의 청을 거절하진 못했다.
어찌어찌해서 차범근을 만난 기자는 그의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지만 예정보다 시간이 상당이 지체됐다.
그러던 중 차범근은 갑자기 난처한 표정과 함께 "지금 훈련시간이 다 돼 간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내려 택시로 타고 가 달라"라며 기자를 도중에 내리게 했다.
얼마뒤 귀국한 기자는 "참 잘 아는 사이인데...어찌 좀"이라며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금보다 더 심하게 인연을 강조하던 시절이라 상당수 사람들은 "훈련 몇분 늦으면 어때, 그래도 먼 곳에서 온 손님인데"라며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바로 그렇게 철투철미했기에 세계 최고 무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라며 차범근을 극찬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pro)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 의미를 확실히 알고 움직인 이들은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확실히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차범근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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