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기도”라는 여배우 박정자
타고난 뮤지컬 배우 최정원 등
연기 통해 대중과 함께 울고 웃는
우리 시대 명배우들의 생 탐색
장원재 지음/북앤피플/1만8000원 |
배우들은 언제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다. 과거 배우들에겐 속칭 ‘딴따라’라는 좋지 않은 말이 따라다녔다. 수십년 전만 해도 그들은 스타이기 이전에 일종의 튀는 사람이었다. 배우란 직업이 제대로 된 사회적 지위로 인정받고, 스타 대접 받는 존재가 된 시점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스타들이 지나는 길목엔 어김없이 소녀부대가 따라붙곤 하는 게 요즘 풍경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름의 배우 인문학을 펼쳐놓으면서 그들의 생을 탐색해보았다.
대중예술 전문가인 저자는 15인의 명배우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내막을 소개했다.
대중과 울고 웃으며 청량제 역할을 하는 배우란 매우 특별한 직업이다. 왼쪽부터 박영규, 박정자, 최정원. |
요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박영규(61)는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기를 보냈다. 하루종일 신문배달로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누구 못지않은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지금은 이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박영규의 화려한 연기 스타일은 그런 아픈 과거를 잊게 한다. 특히 TV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역을 맡아 대중과 더 친해졌다. SNS에 오르내리는 박영규의 명 대사 한토막이다. “정치하는 자에겐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네. 하나는 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구, 내가 상대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날 찾게 만들어야 하네, 그게 정치일세.” “정치에 선물이란 없네.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주는 뇌물이 있을 뿐···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허망한 것도 없지. 전장에서 적을 만나면 칼을 뽑아야 하지만 정치판에서 적을 만날 땐 웃게나. 정치인의 칼은 칼집이 아니라 웃음 속에 숨기는 거니까.”
왼쪽은 손숙, 오른쪽은 전무송. |
박정자(71)는 여배우의 큰손으로 통한다. 50년간 한 해도 공연을 거르지 않은 그는 “대사는 기도”라고 정의하는 유일한 배우다. “박정자는 입 안에 악령이 살아 있는 듯이 대사를 표현한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저자는 “대한민국 현대사는 격동의 역사다. 이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건 불확실과 불안이었다. 그래서 갈망했다. 누군가가 중심을 잡아주었으면 했다. 박정자의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가 보여주는 견고함에 감탄하고 그녀의 경력이 증거하는 꾸준함에 탄복한다”고 해설했다.
뮤지컬 명배우 최정원 역시 최고로 친다. “최고의 흥행은 최고의 프로페셔널리즘과 통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프로의 기질을 타고난 여배우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도나 역을 맡아 세계 톱3 배우로 꼽혔던 그녀는 “뮤지컬은 내 인생의 선물이자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한다.
손숙(70)은 파란곡절의 이미지를 풍기는 배우다. 그녀만큼 곡절의 삶을 견뎌 온 사람도 드물다는 세평이 많다. 배우, 라디오 진행자로 맹활약해 온 그녀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가, 1998년 러시아에서 ‘어머니’를 공연한 후 연극과 뒤늦게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연출가 남편이 사업하다 부도 낸 수십억원의 돈을 22년간 갚아낸 억척맘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행복한 배우가 최고 배우”라고 나름 정의한다. 연극가족으로 유명한 전무송은 “연극은 인격 향상과 품성 도야에 있어서 최고의 도구”라고 풀이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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