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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인생 3모작’ 김성조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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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05 21:54:57 수정 : 2016-08-05 2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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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열심히 한 만큼 성과, 정치는 스케일이 커서 매력, 대학총장은 후진 양성 명예” ‘사업가, 정치인, 대학총장.’

김성조(59)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삶의 궤적이다. 인생 3모작이다. 2모작을 하기도 힘드는데 3모작을 하는 게 보통 행운이 아니다는 물음에 그는 “살다 보니 세 번째 직업에 종사하게 됐다”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영국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연속으로 세 번 운이 좋으면 실력일 수도 있다’는 구절을 읊었다. 인생 3모작을 하며 세 번의 운이 뒤따른 것이 맞지만, 그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거저 굴러온 ‘공짜’는 아닌 듯싶다. 자기계발과 자아실현, 도전정신, 성실함과 운이 어우러져 맺어진 결실로 보였다.

김 총장은 1984년 대학 졸업 후 27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대학 전공인 화공 관련 기술로 전자공업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재학생을 상대로 직접 강의하는 김성조 한국체육대 총장은 “몸을 다쳐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는 학생들은 진로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며 “취업도 중요하지만 창업도 생각해 보라. 창업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 준다. 김 총장은 대학 다닐 때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졸업 후 취업을 하지 않고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출발은 쉽지 않았다. 사회경험이 없어 창업보다는 취업하길 바랐던 아버지가 그때 돈으로 적은 액수가 아닌 2000만원을 지원해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아버지 반대에 부닥쳤지만 아들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자주 가던 동네 식당주인 아저씨를 설득해 이익금을 반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사업자금 전액을 투자하도록 했다. 사업에 대한 청년의 끼가 일찍 발동했다고 해야 할까. 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랜 안면이 있는 식당주인을 끌어들여 점포를 구하러 다니는 등 창업준비에 바쁜 ‘고집’ 센 자식을 지켜 본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을 믿어서라기보다는 어렵게 재산을 모은 식당주인의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아버지는 결국 자식의 사업자금을 댈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해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의 사업이 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식당주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 동안 매출은 ‘제로’였으나 그 후 자리를 잡았다.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구멍가게는 30여명 규모의 번듯한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회사를 법인화하고 경영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 

김성조 총장이 구미청년회의소 회장 때 집회를 열어 남구미대교 건설은 국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첫 번째 시작한 사업이 성공한 후 연속적으로 운이 따라온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5년 구미청년회의소 회장을 맡은 데 이어 그해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북도의원으로 변신한다.

무소속으로 도의원 재선에 성공한 그는 2000년 16대 총선 1년을 앞두고 출마를 위해 도의원을 사퇴해 버렸다. 지방의 무명 정치신인인 그가 당시 이 지역 출신 5선으로 정치거물인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와 맞짱을 뜬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김 전 대표가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난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 총장은 민국당을 창당해 출마한 김 전 대표를 누르고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진출할 수 있는 대운이 찾아왔다고 해야 할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정치를 계속하고 떨어지면 사업을 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결과였다.

국회의원에 내리 3번 당선되는 등 정치인의 길은 순탄해 보이는 듯했으나 2012년 19대 총선 공천에서 고배를 마셔 여의도를 떠나야 했다. 20대에 사업 시작 후 첫 시련이었다. ‘백수생활’ 1년여 만에 뜻하지 않게 한국지적발달장애인 복지협회장이라는 감투가 그를 찾아왔다. 김 총장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하며 장애인을 위한 법안과 예산지원에 애쓰는 등 평소 장애인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이를 눈여겨 본 협회 측이 그를 회장으로 추천한 것이다.

대구 대륜고 시절 소풍을 가서 포즈를 취한 김성조 총장.
그와 한국체육대 총장의 인연은 여기서 맺어진다. 직전 복지협회장을 지낸 김원경 체육대 교수는 2년여간 총장 공석으로 학교가 파행을 겪자 그에게 대학을 이끌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학교를 모르고 대학 행정을 책임질 만한 인물이 스스로 못 된다고 생각한 김 총장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총장 선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인사가 출마해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도 그로서는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김 교수 말고 다른 교수들이 나서 “국회의원 3선 하나 4선 하나 마찬가지다. 의원 세 번 하고 총장 한번 하는 것이 연속으로 4선 의원 하는 것보다 더 보람 있을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 닫힌 그의 마음을 열게 했다.

그의 인생 3모작 자평은 흥미롭다. “사업은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그때그때 나타나고 진행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정치는 스케일이 커 매력 있는 직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학총장은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명예스러운 자리로 지금 나이에는 명예를 더 중시할 때”라고 했다. 자신의 인생에 만족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김 총장은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한국선수단 지원단장 자격으로 지난달 27일 브라질로 향했다. 출국 전인 25일 서울 송파구 오륜동 한국체육대 총장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올림픽과 체대가 얽힌 사연을 설명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레슬링 선수가 한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 체육대 설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선수들이 계속 메달을 딸 수 있는 좋은 방안을 강구하라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듬해인 1977년 3월 서울 태릉에 4년제 국립 한국체육대학 이름으로 문을 연 것이다.

김 총장은 “체육 특성화 전문대학으로 세계 어느 나라 대학과 경쟁을 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획득한 전체 메달의 3분의 1 이상을 체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차지하는 등 대학이 이룬 성과는 대한민국 스포츠신화 그 자체”라고 자랑했다. 개교 후 체육대 재학생·졸업생이 동·하계 올림픽에서 사냥한 메달만 해도 총 96(금 40, 은 32, 동 24)개나 될 정도다. 이번 리우올림픽에 체대 재학생 9명과 졸업생 35명 등 44명이 출전해 이들의 활약이 주목된다. 

그는 “체대는 그동안 주요 국제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둬 국위를 선양하고, 사회체육분야 교사 양성 등 지도자 육성을 통해 국민건강과 생활체육 활성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며 “이제는 글로벌 시대에 맞는 비전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내년에 개교 40주년을 맞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체육대에 ‘아시아 올림픽 아카데미’를 유치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올림픽 경기요원 지도, 교육생 연수 등을 통해 올림픽을 치른 국가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올림픽을 유치하는 아시아 국가에 전수하는 것이 아카데미 유치 목적이다. 내년에 개교 40주년 기념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했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 바흐 위원장은 체육대에서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지난해 2월 취임식에서 비전선포식을 발표하며 체육대학을 명실공히 스포츠 한류 메카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K-팝 스타뿐만 아니라 이상화, 모태범, 양학선 선수 같은 스포츠 인기 스타들이 경기를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다.

올림픽 선수단 지원단장이 리우 현지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홍보활동 지원, 국제교류가 주임무”라며 “선수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일(현지시간) 리우에서 ‘한국의 밤’ 행사를 열어 국외 귀빈을 초청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도 홍보할 예정이다.

브라질의 치안불안과 각종 질병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리우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임원진이 출국 전에 황열, 장티푸스, A형 간염,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맞았으나 안심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박태환 수영 선수의 도핑 파문에 대해선 “도핑은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다. 지금 안 밝혀지더라도 언제가는 밝혀진다는 마음 자세로 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이라며 “결론이 난 이상 수영팀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다들 응원해야 한다”고 했다. 총장 연임을 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교수들의 꿈이 총장인데 외부에서 온 사람이 8년을 한다는 게 너무 잔인한 게 아닌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 김성조는…?

△1957년 경북 구미 출생 △대구 대륜고, 영남대 화학공학과, 경북대 행정대학원 졸 △구미청년회의소 회장 △경북도의회 의원(무소속) △구미미래연구소 소장 △동양전자화학 대표이사 △16, 17,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한국지적발달장애인 복지협회장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현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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