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흙덩어리로 항아리를 빚는 경우다. 항아리에는 빈 공간이 만들어진다. 손에 잡히는 물성(찰흙)으로 비현실적인 요소(빈 공간)를 창조한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예술은 물성과 비물성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내 작품에서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부분이 중요하다. 비물질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물과 인물을 초현실적으로 반사하는 그의 비정형의 작품들이 그렇다. 시공감각 이면의 영적인 요소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작 ‘트위스트’시리즈와 함께 한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 그는 물질이 갖는 정신성을 탐구해온 현대 미술의 거장이다. |
“나는 눈에 보이는 작품의 물질적인 상태를 뛰어넘어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 늘 주목을 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 간결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심심한 예술을 하자는 게 아니라 단순함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단순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그는 참선과 명상도 즐기고 있다. 그렇다고 작품과 직접 연관시켜 보는 것은 무리다. 본인도 선을 긋고 있다.
색의 우물에 빠져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원반형태의 ‘군집된 구름’ 시리즈. |
그의 작품 중에는 원반형태의 것들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평평한 빈 공간의 느낌을 준다. 블랙홀 같은 신비감을 준다. 대표작 ‘하늘거울(Sky Mirror)’도 검은색 안료로 칠해져 있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떠올리게 한다. 구름과 하늘도 손에 잡을 수 없는 비정형에 맞닿아 있다.
“내 작품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 중요한 테마다. 조각의 역사는 물질의 역사라 할 수 있지만 물질 안에는 비물질적인 속성도 있다.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을 영적이라고 한다. 인간인 우리가 예술을 통해 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물질의 물리적 본성에 아주 작은 변화를 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지각이 전환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이 예술의 미덕이라 했다. 영국의 한 기업이 개발한 반타블랙(VantaBlack)의 사용권을 독점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반타블랙은 빛을 99.96% 흡수할 수 있어 ‘세상에서 가장 검은 색’으로 알려져 있다.
“반타블랙은 너무나도 까맣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꿈 같은 색상이다. 신비롭고 초월적이기 때문에 ‘비정형’ 표현에 적합한 재료다. 대형작품에 사용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모든 예술가는 작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작업을 하기 위해 꿈을 꾼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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