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쿠바 시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Omar PEREZ LOPEZ·53)의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로페즈’는 그의 어머니, ‘페레즈’는 그를 키워준 아버지의 이름이지만, ‘오마르’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완성한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의 흔적이다.
어머니 릴리아 로페즈가 ‘체’로부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을 선물받은 기념으로 그의 소생인 아이에게 ‘오마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하니, 이름 하나에 사랑의 역사가 그대로 깃든 셈이다.
오마르는 25살에서야 그의 생부가 체 게바라였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이번 포럼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공동개최한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의 광화문 교보빌딩 응접실에서 그를 만났다.
‘로페즈’는 그의 어머니, ‘페레즈’는 그를 키워준 아버지의 이름이지만, ‘오마르’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완성한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의 흔적이다.
어머니 릴리아 로페즈가 ‘체’로부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을 선물받은 기념으로 그의 소생인 아이에게 ‘오마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하니, 이름 하나에 사랑의 역사가 그대로 깃든 셈이다.
오마르는 25살에서야 그의 생부가 체 게바라였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이번 포럼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공동개최한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의 광화문 교보빌딩 응접실에서 그를 만났다.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어요. 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쿠바는 중국이나 옛 소련 같은 사회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작가협회에 가입해서 작품활동을 하지만, 물론 나도 그 기관 소속이긴 해도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혁명가이자 시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피가 그를 시인으로 만든 건 아닌지 궁금해서 던진 첫 질문이었는데 선입견을 굳히기에 유효한 답이 돌아왔다. 왜 어머니는 그가 25살이 될 때까지 생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그는 “어머니 입장에서 민감한 사안이라 그랬을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잡지와 인터넷에 충분히 많다”면서 더 이상 언급하길 꺼려했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쿠바 시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 남미의 전설적인 혁명가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정치는 스포츠와 같을 뿐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
쿠바에서는 주로 번역가로 생계를 꾸려온 편이다.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함께 하바나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해 영어는 물론 이탈리아어와 네덜란드어까지 해박한 언어 천재에 가깝다. ‘신성한 것’ ‘싸우는 고양이에 대해 아시나요?’ 등 시집은 7권 펴냈고 니콜라스 기옌 문학상, 쿠바비평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악은 시와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 그의 생을 지탱하는 힘이다. ‘한 어부가 다른 어부와 함께 가고 있다/ 한 갈매기가 어부들 위를 날아가는 다른 갈매기와 함께 날고 있다’는 그의 짧은 시 ‘무리’(Congregations)에 대해 물었다.
그는 프랑스인 ‘선’(ZEN) 스승을 만난 이래 승려가 된 시인이기도 하다. 술과 담배를 즐기면서도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는 스타일로 정통불교 승려와는 다른 차원이다. 쿠바에는 절도 없고 그를 따르는 신도도 없다. 그는 일본 ‘선’에 대해 20년 전 처음 접한 뒤 곧 빠져들었다고 했다. 하이쿠의 대가 바쇼를 좋아한다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주의국가에서 살아왔는데 체제가 그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변화가 있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체제가 믿음이나 사상을 강요할 수 있겠죠. 스스로 다른 걸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체제의 ‘인질’로 살아왔을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이념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시인이란 “관찰하는 사람”이라면서 “그 힘만으로도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시의 영감은 우주에서 위성처럼 날다가 대기권을 뚫고 날아와 꽂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그는 “정치에서 멀어지라”고 했다. 그는 “정치는 스포츠와 같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는 없다”면서 “인류가 이상사회를 팽개치고 경찰, 군인, 은행, 비밀번호 따위 같은 복잡한 것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왔으니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적도 인근 카리브해 섬나라에서 온 그는 정작 노장사상에 빠진 시인이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