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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흑역사'…주택사업, 술집 접고 주식으로도 탕진

입력 : 2017-06-09 22:16:34 수정 : 2017-06-09 22: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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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자료사진.

요리사로 친숙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목조주택 사업을 접어야 했던 아픈 과거가 온라인상에서 새삼 다시 회자되고 있다. 술집을 운영하다가 헐값에 넘겨야 했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린 '흑역사'를 썼던 백 대표는 시련을 딛고 오늘날 외식사업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그는 지난 1996년 9월6일자 매일경제신문의 ‘챌린저’ 섹션에 목조주택 사업의 선두주자로 소개됐다.

기사에서 백 대표는 원조 쌈밥집의 창업자일 뿐만 아니라 목조주택을 짓는 ‘다인’의 창업자로 소개됐다. 당시 다인은 50억원대의 연간 매출액을 달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창 시절부터 남달랐던 그의 성공 노하우도 기사에 등장한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백 대표는 고교 졸업 직후 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서 브로커로 이름이 날 정도로 장사에 대한 수완이 있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는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달 만에 이 가게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후 술장사를 계속하며 몇 차례 업종을 바꿨다는 그는 대학 3학년까지 가게 3개를 운영할 수 있었고, 당시 자산만 15억원에 달했다.
 
1996년 9월6일 매일경제신문에 등장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목조주택사업 '다인'의 사장으로 소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백 대표는 다음 목표로 강남의 나이트클럽을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한 가족이 “(지금 군대에 가면) 좋은 곳으로 빼주겠다”고 유혹해 학사장교로 입대한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결국 그는 경북 영천까지 내려가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입대 후 정부의 ‘자정 이후 유흥업소 영업금지 방침’이 떨어졌고, 술집의 가치는 헐값으로 떨어졌고 그대로 가게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남은 돈을 주식에 쓸어 넣었지만 이마저도 해당 회사의 부도로 휴지 조각이 됐다고 한다.

제대 후 그는 논현동에 10평 남짓한 인테리어 사무실을 냈다. 이후 망한 식당을 인수해 차린 쌈밥집이 대박을 터뜨려 사업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주력하던 목조주택 사업을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완전히 접어야만 했다. 결국 요식업계로 뛰어들어 현재 중국집과 카페, 고깃집 등 전국 1000곳이 넘는 외식업 매장을 보유한 더본코리아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뉴스팀 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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