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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부패행위에 가담했지만 공익제보를 한 것을 인정해 형을 감경한 건 지난 6월 문재인정부의 공익제보자 보호조치 발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14일 법조계 및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제주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박희근)는 지난 10일 H상담소 제주지부의 보조금 부정사용을 감독기관에 신고했지만 부패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김은숙(48)씨에 대해 공익제보자 보호 차원에서 징역형에서 벌금 200만원으로 감경,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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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015년 4월과 5월 상담소 제주지부의 보조금 부정 사실을 확인하고 감독기관과 관할 경찰청 등에 부패 행위를 신고했지만, 1심 법원은 지난 2월 상담소 지부의 보조금 편취 등을 인정하고 이를 지시한 소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는 한편 직원이던 김씨도 상관 지시에 따라 허위자료를 작성하는 등 범죄에 가담했다며 다른 직원 2명과 동일하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이에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항소했다. 공익제보자 단체와 참여연대 등은 “김씨가 처음 신고하면서 수사가 이뤄졌고 김씨 스스로 16차례나 경찰에 출석해 조사에 협조하는 등 진실 규명에 앞장섰는데도 1심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익제보를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7월 김씨가 공익제보자라는 점을 확인하고 책임 감면을 요청하는 서류를 재판부에 보냈고, 참여연대 등도 “공익제보를 통해 공익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 김씨의 범죄관련 책임을 부패방지법 취지에 따라 형의 감경 또는 감면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현행 부패방지법(제66조)는 ‘이 법에 의한 신고를 함으로써 그와 관련된 자신의 범죄가 발견된 경우 그 신고자에 대해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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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익제보자 단체 및 시민단체 등은 공익제보자의 역할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평가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용환 전 ‘공익제보자와 함께 하는 모임’ 대표는 “일부 감형이 이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무죄나 선고유예 등 파격적인 선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고 평가했다.
문재인정부는 앞서 지난 6월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해 자신이 부조리 행위에 관여했더라도 스스로 부패 행위를 신고할 경우 형벌을 의무적으로 감면해주는 ‘필요적 책임감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장혜진·임국정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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