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오디 머피' 기념병원앞의 오디 머디 동상. 16살 어린나이에 2차대전에 참전, 최고 영예의 명예훈장을 받은 유일한 허리우드 스타로 미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국군의 날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우리군이 38선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56년 국무회의에서 결정됐다.
한국전쟁 초반 한없이 밀리기만 하던 우리군은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선 끝에 1950년 10월 1일 3사단 23연대가 강원 양양의 38선을 가장 먼저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들어 광복군 창설일(1940년 9월17일)을 국군의날로 삼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 국군의날이 옮겨질 가능성도 있다.
국군의날을 맞아 스타 신분을 훌훌 벗어던지고 전쟁의 포화속으로 뛰어든 스타들을(주로 허리우드 스타 중심) 살펴 봤다.
명예훈장 등 33개의 훈장을 매단 오디 머피. 2차대전 참전 군인 중 가장 많은 훈장을 탄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
▲ '용서받지 못할 자'의 오디 머피…우리에겐 덜 알려졌지만 '명예훈장'받은 전쟁 영웅
오디 머피(1926년 6월 20일~1971년 5월 28일)는 1955년 히트작 '용서받지 못할 자' 주연을 맡는 등 1950~60년대 허리우드에서 제법 이름깨나 날렸던 배우이다.
그보다 미국인들은 미국 역사상 최고 전쟁영웅 중 한명으로 머피를 기억하고 있다.
166cm, 50kg의 연약한 체구였던 머피는 16살이던 1942년 2차대전에 자원입대해 숱한 전투에 참가했다.
1945년 1월 26일 홀츠바이어 전투때 전차소대장 머피는 단독으로 128명의 독일군과 맞섰다. 이 일로 머피는 최고 등급의 의회명예훈장(MEDAL OF HONOR·대통령 등 계급과 관계없이 모든 이로부터 먼저 거수경례를 받는다. 명예훈장을 받은 이에 대한 예우와 대접은 상상을 초월한다)을 받았다.
이밖에 머피는 은성무공훈장 등 모두 33개의 훈장을 받아 2차대전 당시 가장 많은 훈장을 탄 병사로 기록됐다.
1971년 5월 28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머피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알링턴에서 존 F. 케네디 묘지 다음으로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머피의 묘역이다.
공군 준장으로 임명된 뒤 기념촬영을 한 제임스 스튜어트. 허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신사이지만 전쟁터에 뛰어들어 허리우드 역사상 가장 높은 계급까지 올랐다. |
▲ 공군 준장인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의 국민배우 제임스 스튜어트…역사상 가장 높은 계급을 단 허리우드 스타
제임스 스튜어트(1908년 5월 20일~1997년 7월 2일)는 1940년 '필라델피아 스토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대표적 허리우드 스타이다.
특히 1939년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워싱턴 정가의 위선을 벗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1935년 비행조종사 자격증을 획득한 그는 2차대전이 발발하자 조국에 도움이 되겠다며 참전했다
192cm의 큰 키였지만 약골인 탓에 신체검사에 떨어지자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 군의관에 통사정한 끝에 복무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어 1941년 3월 전폭기 조종사가 된 스튜어트는 24회나 폭격작전에 참가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스튜어트는 공군과 인연을 이어갔으며 1959년 예비역 공군준장으로 진급했다.
1958년 히치콕의 '현기증' 등을 통해 여전한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4년여간 삶과 죽음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2차대전 참전 여파로 신체노화와 탈모가 진행되는 등 나름의 아픔을 겪었다.
프로 오토바이 레이서로도 유명했던 스티브 맥퀸은 한국전 참전용사이다. |
▲ 상남자 스티브 맥퀸…'대탈주' '빠삐용' '타워링'의 명배우, 한국전 참전
스티브 맥퀸(1930년 3월24~1980년 11월 7일)은 대탈주, 빠삐용 등을 통해 거친 남성의 매력을 마음껏 과시했던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이다.
프로 모터사이클 대회에 출전할 만큼 스피드 광이였던 그는 1947년 해병대에 입대, 훈련중 동료 5명을 구해내 대통령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참전, 그해말 제대했다.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전세계 팬들을 사랑을 끌어 모았던 클라크 게이블은 2차대전 때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 여러차례 공습에 나섰다. |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클라크 게이블, 폭격기 조종사로 2차대전 참전
윌리엄 클라크 게이블(1901년 2월 1일~1960년 11월 16일)은 1939년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렛트 버트럴 역으로 유명한 허리우드의 별이다.
비행기 조종 면허를 갖고 있던 게이블은 3번째 아내 캐롤 롬바드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바로 그날(1942년 1월 16일) 공군에 입대, 짧은 교육(사관학교)만 받고 소위로 임관했다.
독일 폭격에 참가하는 등 조국에 헌신하다가 1944년 5월 소령으로 예편했다.
미드 '밴드 오브 드라더스'에서 싱크 대령역을 맛깔나게 해 낸 데일 다이는 사관학교 출신의 월남전 전쟁 영웅이다. |
▲ '밴드 오브 브라더스' 싱크 대령 데일 다이, 사관학교 나온 베트남전 영웅
데일 다이(1944년 10월 8일생)는 미주리주 사관학교를 거쳐 해병대에 입대, 대위로 제대했다.
31차례나 전투에 참가, 동성무공훈장 등을 받은 역전의 용사로 그 경험을 살려 '밴드 오브 브라더스', 플래툰(중대장역) 등에서 실감난 연기를 펼쳤다.
▲ 올리버 스톤, 로버트 듀뱔 등
플래툰과 7월4일생으로 두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올리버 스톤(1946년 9월 15일생)은 수색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 동성무공훈장과 퍼플하트(부상당한 병사에게 수여) 등을 받았다.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 등을 통해 묵직한 울림을 남겼던 로버드 듀발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에 참전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간판스타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모습. 마지막 4할타자로 유명한 그는 2차대전과 한국전 때 유니폼을 벗고 비행기 조종간을 잡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대표적 스타였다. |
▲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 조국을 위해 두 번 씩이나 참전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1918년 8월 30일 ~ 2002년 7월 5일)는 메이저 리그 마지막 4할 타자로 유명하다.
테드 윌리엄스가 1941년 시즌 타율 0.406을 기록한 후 메이저리그에서 4할을 친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최전성기를 누리던 테드 윌리엄스는 20대 중반과 30대 초반 조국을 위해 야구 배트를 버리고 비행기에 올라 났다.
전성기 5년을 2차대전과 한국전쟁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테드 윌리엄스. 마지막 4할타자였을 만큼 뛰어난 그였기에 야구로 볼 때 아까운 측면이 분명 있었다. |
1943년부터 1945년동안 해군 조종사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1952년과 1953년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시즌을 뛰면서 통산 2292경기에 출전 타율 0.344, 출루율 0.482, 장타율 0.634, 521홈런, 2654안타를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가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야구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해병 204기로 월남전에 참전한 가수 남진의 모습. |
▲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렸던 남진, 해병 청룡부대원으로 월남전 참전
남진(1946년생)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가요계과 영화계를 휩쓸었던 주인공이다.
1967년 '가슴 아프게'로 대히트를 친 남진은 영화, 가요계를 넘나들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68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남진은 가수 진송남(1943년생) 박일남(1947년생) 이태원(1948년생)과 나란히 자원입대,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덕수궁 돌담길'의 자수 진송남(왼쪽)과 '솔개' 등을 부른 가수 이태원(오른쪽)도 월남전에 참전했다. |
군은 이들의 자원입대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등 홍보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해병 204기인 남진은 진송남, 이태원과 함께 월남으로 가 해병 청룡부대(현 해병 2사단) 2대대 5중대 2소대에 배치돼 3년여를 보냈다.
제대후 남진은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집고~'라는 '님과 함께'로 최고가수 자리를 금방 되 찾았다.
월남참전용사 위문공연 때 가요사상 최대 히트곡이라는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있는 이미자. |
▲ 한국전 종군 연예인, 월남전 위문공연 연예인 모두 참전용사
한국전과 월남전에 직접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연예인이 전후방을 넘나들면서 위문공연을 펼쳤다.
이국먼리 월남까지 가 사선을 넘나들었던 장병들은 이미자가 '동백아가씨'를 열창할 때 따라 부르면서 눈물바다를 이룬 사연은 유명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