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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본스런… 전통 채색화 진수를 보다

입력 : 2018-04-26 21:16:30 수정 : 2018-04-26 21: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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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일본 회화 특별전 열어 호림박물관이 ‘일본 회화의 거장들’이란 제목으로 일본 회화 특별전을 9월까지 개최한다. 박물관 소장의 일본 회화 300여점 중 90여점을 가려 뽑았다. 출품작 대부분이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일본 언론의 관심을 끌 만큼 희귀한 작품도 있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일본의 회화를 가장 일본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소개된 2전시실의 채색화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채색화 전통은 헤이안시대 후기인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9세기 말 중국으로 보내던 사절단을 폐지하면서 그때까지의 ‘가라에’(唐繪·중국풍 회화)와 대비되는 ‘야마토에’(大和繪)를 발전시켰다. 그림에 일본인의 얼굴과 일본 명승지, 의상, 예능 등을 본격적으로 채택했고 그것이 채색화로 표현된 것이다.

‘산쥬로쿠닌카슈’는 일본을 대표하는 가인(歌人) 36명의 초상과 그들의 ‘와카’(和歌)를 모아 만든 일종의 시화집이다. 이를 12폭 병풍으로 표현한 호림박물관 소장품은 일본에서도 사례가 적어 주목되는 유물이다.
호림박물관 제공
◆‘밝고 산뜻하며 섬세한’ 일본의 채색화

2전시실의 채색화는 명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수용한 1전시실의 수묵화, 중국·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한 3전시실의 작품들과 한눈에도 차이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색감이 확연히 다르다. 채색화는 ‘일본 회화 특유의 밝고 산뜻하며 장식적이면서 섬세한’ 그림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이장훈 학예연구사는 “진채를 사용한 중국, 조선의 채색화는 원색의 느낌이 강하고 전반적으로 같은 톤을 유지하지만 일본 채색화는 산뜻한 느낌을 주며 물감의 번짐 효과를 적절히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다나카 도쓰겐의 19세기 초 작품인 ‘강안초목도’는 “서정적인 일본의 풍경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하는 황토색과 초록색의 색채 감각을 바탕으로 은은하면서 단정한 품격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채색화는 일본 특유의 문화, 풍경, 얼굴 등을 담았다. ‘산주로쿠닌카슈’(三十六人歌集)는 12세기 초 후지와라 긴토가 정한 대표 가인(歌人) 36명의 초상과 그들의 ‘와카’(和歌)를 모아 만든 일종의 시화집으로, 전통회화 기법과 문학작품을 매치한 대표적인 주제다. 유력한 필획의 가나 문자와 화려한 채색기법, 세밀한 종이장식 등이 종합되어 일본 전통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도 꼽힌다.

이번 전시에 나온 ‘산주로쿠닌카슈십이폭병풍’은 36명의 가인을 모두 표현한 데다 가인 또는 와카만 따로 모은 사례가 많아 일본 현지의 것과도 달라 특히 주목된다. 나미키 세이시 교토공예섬유대학 교수는 “박물관 컬렉션 중에 산주롯카센도(三十六歌仙圖)를 그린 작품이 4점 있는데 한 컬렉션 안에 이 정도로 포함되어 있는 건 진귀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귀족층 사이에서 널린 읽힌 소설 ‘겐지모노가타리’를 표현한 작품도 흥미롭다. 에도시대의 작품인 ‘겐지모노가타리도’는 “건물의 지붕을 떼어내 위에서 아래도 건물 내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과 가늘고 길게 옆으로 찢어진 눈매를 한 인물표현”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전통 예능 ‘노가쿠’(能樂)의 하나인 ‘하고로모’(羽衣)를 그린 기무라 간잔의 19세기 작품, 도리이 길로 유명한 교토의 이나리산을 모티프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오카모토 도요히코의 실경산수화 ‘이나리야마도’ 등도 채색화의 한 사례로 출품됐다.

다나카 도쓰겐의 ‘닌토쿠덴노도’는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밥짓는 연기를 보고 백성의 안위를 판단했다는 닌토쿠덴노(仁德天皇)의 고사를 주제로 했다.
호림박물관 제공
◆채색화에 담긴 ‘천황’ 수호의 의지

채색화에 담긴 일본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일본의 전통 화단은 쇼군 직할의 ‘가노파’(狩野派)와 일왕이 거느렸던 ‘도사파’(土佐派)로 크게 나뉜다. 이 중 채색화로 표현된 야마토에의 전범이 된 집단이 도사파였다. 이에 따라 에도시대 후기 고전적인 야마토에의 부흥은 도사파가 주도했다. 쇼군 체제 유지를 바랐던 막부파와 ‘천황’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추구했던 존왕파의 갈등이 치솟던 에도시대 후기의 채색화에 ‘천황’과 관련된 고사나 그 주변 인물을 내세운 것이 많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다나카 도쓰겐의 ‘닌토쿠덴노도’는 4세기 대의 인물인 닌토쿠덴노(仁德天皇)의 고사를 주제로 했다. 그림은 누각 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바라보는 닌토쿠덴노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마을에서 밥을 지을 때 생기는 연기가 잘 나는지를 살펴 백성의 안위를 판단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이 작품은 “소나무와 누각의 세밀한 묘사, 진한 채색, 화면 전반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갈색의 배경색에서 야마토에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가마쿠라시대 고다이고덴노(後醍?天皇)를 위해 싸운 무사 구스노키 마사시게를 그린 채색화도 눈길을 끈다. 일본 역사에서 가장 용맹하고, 책략이 뛰어난 무장으로 평가되는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왕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상징하는 인물로 통한다. 특히 2차 대전 중 일본에서는 “덴노에 대한 충성을 바친 지사(志士)의 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다.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먼 산을 응시하는 무장을 그린 작품은 벚꽃으로 유명한 요시노 지역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도상인데, 이런 그림 속 무장은 구스노키 마사시게로 인식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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