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끝 한점 섬’이라는 애잔함도, 쉽게 갈 수 없다는 거리감도, 뭍에 발 내리는 순간 여지없이 깨져… 복닥대는 항구의 첫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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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저동항은 방파제에 둘러싸여 있어 물결이 잔잔하다. 약간 경사진 곳에 자리 잡은 어촌 마을이 잔잔한 바다에 비쳐 육지에 있는 호수마을 풍광처럼 다가온다. |
배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면 바다를 접한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주위 다른 나무들은 거센 바닷바람에 기죽어 작은 체구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이 나무만 유독 새하얀 몸통을 하늘을 향해 길게 내뻗고 있다. 이리저리 굽은 외형만 보더라도 나무가 풍랑을 버티며 보낸 인고의 세월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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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항에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2000년 넘게 산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
이 나무를 기준으로 능선을 따라 육지 쪽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같은 종류의 나무 한 그루가 또 눈에 띈다. 바다 쪽에 있는 나무보다 키가 작고, 잔가지도 없이 봉우리 위에 서 있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나무보다 더 위태로워 보인다. 그저 바닷바람을 이겨낸 채 버티고 있는 나무로만 보이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살아있는 나무들이다. 화산암 돌부리에 내린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며 2000∼2500년의 세월을 이겨낸 향나무다. 삼국시대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이다.
육지 쪽 산봉우리에 있는 향나무가 바다를 향해 있는 향나무보다 형님이다. 두 그루 모두 아래에서 올려다볼 수 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험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 있는지 뻔히 알지만, 쉽게 갈 수 없는 이곳 울릉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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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전 일출전망대의 일출. |
수많은 유인도를 품은 서해·남해와 달리 동해의 울릉도는 부속섬 독도, 죽도 등과 함께 유일한 유인도다. 섬 여행은 육지와 떨어진 외진 곳을 간다는 기대감을 품게 하는데, 울릉도는 묵직한 무게감을 함께 던져준다. 부속섬 독도가 있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에서 출발한 정기여객선이 울릉도 도동항에 정박한 후 뭍에 발을 내리자,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무게감은 여지없이 사라져 버렸다. 배가 정박하면 육지에서도 이런 도떼기시장을 보기 힘들 정도로 도동항은 정신없다. 작은 항구 주차장은 대형버스, 렌터카 등으로 가득 차 있고, 단체 여행객을 찾는 푯말을 든 이들과 배에서 내린 여행객들로 항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한적할 것만 같았던 울릉도의 환상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달리 보면 거리가 멀고, 가기 쉽지 않을 뿐 이곳 역시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우리 이웃 동네나 마찬가지란 생각에 마음속 거리감이 좁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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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이 정박하면 도동항은 도떼기시장처럼 차량과 인파로 붐빈다. |
◆울렁울렁 울렁대던 가슴도, 해안도로 달리다보면 어느새 뻥∼
다시 울릉도에 대한 환상에 파묻히려면 도동항을 빠져 나와야 한다. 울릉도 여행은 크게 해안도로 드라이브, 해안길 걷기, 울릉도 주변을 돌거나 독도에 가는 유람선 코스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울릉도 여행은 해안 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이다. 아직은 울릉도를 순환할 수 없다. 내수전에서 북면 섬목 사이의 터널이 뚫리는 오는 10월이 돼야 진짜 일주도로가 된다. 지금은 섬목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그 길로 돌아와야 한다. 일주도로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린 뒤, 돌아와야 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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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행남해안산책로에서 저동옛길 방향으로 가면 바닷길과 저동항, 죽도,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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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해안 일주도로는 내수전에서 북면 섬목 사이의 터널이 뚫리는 오는 10월이 돼야 진짜 일주도로가 된다. 지금은 섬목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그 길로 돌아와야 한다. |
도동항에서 출발한다면 내수전 일출전망대가 첫 목적지다. 울릉도는 다른 섬들보다도 평지가 적다. 바다에 있으니 섬이 됐지, 육지였다면 울릉도는 꽤 악명 높은 산으로 불렸을 듯하다. 화산이 분출한 나리분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관광지가 경사길을 올라야 한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가는 길도 육지의 산길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올라야 한다. 주차 후에도 15분 정도 계단과 오르막길을 올라야 이른다. 명칭처럼 울릉도에서 해뜨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울릉도 여행 중 이곳에서 뜨는 해를 본다면 아마 그날은 일반인 중 한반도에서 가장 빨리 뜨는 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꼭 일출이 아니더라도 한쪽으로는 저동항이, 반대편으로는 죽도 풍경이 펼쳐진다. 저동항이 아담한 미니어처처럼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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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 개의 바위 기둥이 불쑥 솟아 있는 울릉도 삼선암은 해안 일주도로의 하이라이트다. |
저동항으로 내려가면 바다 쪽 촛대바위가 눈에 띈다. 오징어 배로 들썩여야 할 것 같은 항구는 아직 조용하다. 한여름에 펼쳐질 오징어 축제 때는 ‘울릉도 아지매’들의 오징어 배따기작업이 쉴 새 없이 이뤄질 것이다. 방파제에 둘러싸여 있어 저동항은 물결도 잔잔하다. 약간 경사진 곳에 자리 잡은 어촌 마을이 잔잔한 바다에 비쳐 육지에 있는 호수마을 풍광처럼 다가온다.
저동항에서는 요즘엔 오징어보다 ‘독도새우’가 더 유명하다.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서 잡히는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 도화새우 등을 ‘독도새우’로 통칭한다. 김동수(67)씨와 사위 김강덕(36)씨의 저동항 천금수산이 대표적이다. 천금수산을 포함해 두 집만 독도새우를 잡는데, 모두 직거래를 한다. 45년 전 김동수씨가 새우를 잡을 땐 많은 주민이 새우를 잡았지만, 타산이 안 맞아 거의 접었다고 한다. 독도새우는 회로 먹어야 단맛이 강하다. 이를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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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독립문바위. |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거북이 울릉도를 오르는 형상을 닮은 거북바위가 있는 통구미마을을 지나 학포마을에 이른다. 학포에는 울릉도의 개척역사 유적이 있다. 조선 고종임금이 파견한 이규원이 1882년 4월 30일 울릉도에 처음으로 도착한 마을이다. 조선은 왜구와 여진의 침입으로 울릉도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을 폈다. 이후 왜구에게 울릉도를 빼앗길 것을 우려해 이규원을 통해 실태조사를 했다. 다시 주민들을 이주시켰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포마을엔 이규원이 울릉도에 도착한 후 새긴 각석문이 남아있다.
태하에 이르면 관광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른다. ‘바람을 기다리는 구덩이’라는 뜻의 주상절리 석벽 대풍감과 짙고 푸른 물빛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마주하는 해안선과 노인봉, 송곳봉이 이어진 경관도 대풍감 풍광에 뒤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일주도로가 막힌 부근의 삼선암에 이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 개의 바위 기둥이 불쑥 솟아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세 명의 선녀 중 막내가 호위 무사와 눈이 맞자, 노한 옥황상제가 셋을 모두 바위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선암을 지나면 울릉도와 연결된 관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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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석포까지 이어진 둘레길에서는 원시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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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남해안산책로는 절벽과 동굴을 지나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걷는 길이다. |
울릉도를 걸으면서 느끼려면 행남산책로는 필수코스다. 도동항에서 저동항까지 이어진 해안길이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같은 화산섬이지만 동해 한복판에 있어 수심이 바로 깊어진다. 그동안 본 에메랄드빛 바다는 울릉도에 비하면 그냥 푸른 바닷물이었을 뿐이다. 울릉도답게 산책로는 절벽과 동굴을 지나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한다. 힘이 들 때쯤 몽돌해수욕장에 이른다. 행남 등대로 바로 오를 수 있는데, 그보다 저동옛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다. 저동옛길 방향으로 가면 저동해안산책로를 만난다. 지금은 다리가 끊어져 산책로로 저동을 갈 수는 없다. 옛길을 통해야만 갈 수 있다.
산책로를 이용할 순 없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울릉도에서 가장 빼어나다. 해안산책로와 저동항, 죽도, 그리고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다. 이곳에서도 행남 등대까지 길이 이어져 있다. 바닷길 외에도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석포까지 이어진 둘레길도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울릉도에서 계곡소리를 들으며 양치식물 등 원시림이 살아있는 길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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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울릉도에서 1시간 30분가량 가야 도착한다. 선착장이 동도와 서도 중간에 있어서 한눈에 독도를 담긴 힘들다. |
배를 타고 울릉도를 한바퀴 돌 수 있지만, 첫 방문이라면 독도가 기다린다. 날이 좋아야만 독도에 접안이 가능하다. 접안이 힘들면 독도 주위를 돌고 돌아오고, 파도가 심하면 배가 운항하지 않는다. 독도 가는 배는 저동항에서 출발한다. 울릉도에서 1시간 30분가량 가야 도착하는데, 접안을 하면 20∼30분 선착장에 내릴 수 있다. 동도와 서도 중간에 마련된 선착장이어서 한눈에 독도를 담긴 힘들다. 독립문바위와 숫돌바위 등이 눈에 들어온다. 특별한 날이어야 흔들었던 태극기의 휘날림에 코끝이 찡해진다. 독도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돌아가는 길이 아쉽다면 인터넷으로 ‘독도명예주민증’을 신청할 수 있다. 타고 간 배의 승선권 번호가 필요하니 표를 버려선 안 된다.
울릉도·독도=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여행 TIP
○…울릉도 여행 시 가장 큰 고민은 이동 거리와 시간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울릉도에 가는 배를 타려면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잠을 설쳐야 한다. 여기에 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족히 10시간은 넘게 걸린다. 여행박사는 이동 시간을 반으로 줄여 좀 더 빠르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울릉도 여행’을 내놓았다. 비행기로 가는 경우, 김포에서 대구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후 포항여객선터미널로 넘어가 배를 타고 울릉도에 입도하는 일정으로 5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대구공항에서 포항여객선터미널까지의 버스 이동 시간을 더해도 버스를 타고 울릉도를 가는 시간보다 반 정도 줄어든다. 이번 상품은 육로 이동 시간을 줄여 밤잠 설치며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부담을 줄였다. 가격도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왕복 항공권, 항구로 이동하는 셔틀버스, 육로관광, 숙소 2박, 식사 4식 등을 포함해 34만1000원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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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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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내장탕. |
○…울릉도를 대표하는 식재료는 오징어다. 장시간 배를 타고 와 울렁대는 속을 가라앉히는 데는 오징어 내장탕이 제격이다. 내장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선하기에 가능하다. 청양고추와 무, 콩나물 등이 들어가 개운하면서 얼큰하다. 도동항 오른편 ‘우성회센터’가 맛집이다. 홍합밥도 별미다. 도동항 보배식당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나 손꼽힌다. 천부리의 만광식당에서 파는 꽁치물회도 맛봐야 한다. 물을 넣지 않고 잘게 썬 냉동 꽁치를 무·오이 등과 비빈다. 비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꽁치 기름이 더해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비빈 후 물을 넣고 밥을 말아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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