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국외소재문화재재단 공동기획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에 대한 지건길 재단 이사장의 자평이다. 기획의 의의와 방향을 밝힌 지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지난해 8월 7일자에 1회로 게재했고, 이후 한국 근대 미술시장의 역사를 소개한 ‘1930년대 황금광 시대 조선 고미술품 시장 호황기 열다’부터 해외 문화재 보존처리의 성과와 의의를 다룬 ‘곽분양행락도 병풍, 보존처리 덕분에 20년 만에 햇빛’까지 5개월여간 매주 화요일에 한 면을 할애해 보도했다.
해외 문화재가 문화재 정책의 주요한 대상 중 하나인 만큼 관련 보도는 그간에도 많았다. 특히 해외 문화재 환수는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운 사안이라 사회적 이슈가 되어 열띤 토론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과 관련된 각종 이슈와 활동 상황, 한계, 정책적 시사점 등을 장기적·종합적으로 다룬 경우는 없다시피 했던 터라 기획 의의는 컸다. 해외 문화재 관련 사업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현장 경험을 정리해 생생함이 더했다는 것도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글의 내용을 시각화해 풍성함을 더한 필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 사업 과정에서 확보한 희귀 자료들은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자료로서 가치를 가질 것이다.
지난달 26일 기획 정리 대담을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에서 가졌다. 지 이사장과 김홍동 재단 사무총장, 필진 중 강임산·김상엽·차미애 팀장이 참석했다. 마지막 20회는 대담의 주요 내용으로 실어 기획을 마무리한다.
# 실태조사는 문화재 환수의 토대
▲김 팀장: 근대 미술시장을 다루는 글을 쓰면서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나간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고자 했다. 해외 문화재 중 약탈된 게 많기는 하지만 매매, 선물, 교환 등으로 나간 것도 적지 않다. 당시의 골동상, 개항장에서의 미술품 거래 등을 보여주는 자료 사진을 썼던 것도 그래서다. 약탈된 것이니 당연히 돌려받아야 할 것으로만 보는 건 해외 문화재를 보는 시각을 제약한다.
▲차 팀장: 해외 문화재 실태조사를 통해 유출 경위를 더욱 치밀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조사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고, 단계도 복잡해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작업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으면 한다.
▲김 총장: 지금까지 파악된 17만여 점의 해외 문화재 중 실태조사를 마친 것은 7만여 점이다. 실태조사를 조속히 완료하는 게 급선무다. 실태조사를 통해 유출의 불법성이 명확해져야 환수를 보다 강력하고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매주 보도된 세계일보·국외소재문화재재단 공동기획 ‘해외 우리문화재 바로알기’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중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대담에서 참석자들이 그간의 기사를 모은 스크랩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엽·차미애 팀장, 지건길 이사장, 김홍동 사무총장, 강임산 팀장. 이재문 기자 |
▲지 이사장: 불법반출된 ‘이선제 묘지(墓誌: 죽은 사람의 생애를 평평한 돌이나 도자기에 새겨 넣어 무덤에 함께 매장한 기록물)’를 (2017년 기증 형식으로) 환수한 것은 큰 성과였다. 문화재 분야의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거둔 가뭄 끝의 단비 같은 반가운 일이었다.
▲강 팀장: 밀매단이 반출한 문화재가 한·일 우호의 한 상징물이 된 사례가 아닌가 싶다. 4년 정도 쫓아다닌 끝에 좋은 결과를 거뒀는데 일본인 소장자가 선한 분이었다. 불법적으로 유출된 사실을 알고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묘지가 유출될 당시 관련 기록을 충실하게 남겨 환수 단초를 마련한 성실한 공무원이 있었다는 점도 기억했으면 한다.
▲차 팀장: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은 겸재 정선 화첩 등 여러 점의 소장품을 조건 없이 한국에 돌려줬다. ‘한국에서 더 사랑을 받을 것이니 돌려주어야 한다’는 그들의 정신은 세계인들이 감동할 만한 것이고, 문화재 환수의 화두이기도 하다. 영구대여나 기증 등의 형태로 문화재를 돌려보내는 이런 사례들이 자극이 되어서 추가적인 환수로 이어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도 이런 움직임은 계속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 이사장: 환수는 크게 정부 간의 협정·대여·구입·기증 4가지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기증은 파급효과가 가장 크다. 환수된 문화재가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하다. 이런 사례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 해외 문화재 현지 활용의 중요성
▲김 팀장: 해외 소장기관의 수장고에 사장되다시피 한 우리 문화재를 끄집어 내 전시하고 관련 출판물을 제작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소장국에서 널리 알리는 매체로서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지 이사장: 중국, 일본의 문화재에 비해 관심이 떨어져 소장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과소평가하거나 가치를 아예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일깨워서 자발적으로 전시하게 하고, 그 나라 국민들에게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 팀장: 보존처리 지원은 해외 문화재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중요한 정책이다. 해외 소장기관에 실태조사를 나가보면 엄두가 나질 않으니 훼손된 우리 문화재를 그대로 두거나 중국·일본 전문가들에게 맡겨 오히려 원형을 파괴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보존처리 지원에 신경을 쓰고, 관련 인력 양성에도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영어로 된 출판물을 늘려 달라는 주문도 정말 많다. 이런 자료들이 적기 때문에 외국인 전문가들이 우리 문화재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다.
▲김 총장: 지금까지 재단이 지원해 보존처리한 해외 문화재가 30건 정도된다. 해외 문화재를 국내로 들여와 보존처리를 해왔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등의 비효율이 있는 만큼 이제 해외에 한국 문화재 보존을 위한 거점 설립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해외 박물관·미술관의 한국 전시실을 활성화시키는 게 정말 중요하고, 재단도 이런 부분과 관련된 업무 범위를 넓혀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김 팀장: 그동안 심포지엄, 전문가 세미나, 해외큐레이터 워크숍 등을 개최하며 문화재 전문가들이 국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실태조사를 나가면 보다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김 총장: 2019년에는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한 해외 문화재를 모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다. 해외 문화재를 국내에서 활용하는 한 방식이 될 것이다. 평상시에 해외 기관들과 유대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 해외의 역사적 공간에 대한 관심도 커져야
▲강 팀장: 독일에서 활동했던 이미륵, 일본에 유학했던 윤동주와 관련된 장소들이 현지에 남아 있다는 걸 소개하는 글을 썼는데 동산 문화재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곳은 현지 실정법에 따라 관리될 수밖에 없다. 해당 국가의 지방자치단체나 뜻 있는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
▲지 이사장: 외국에서 활동했던 우리나라 사람과 관련된 유적지의 현지 활용은 중요하다. 현재 동산 문화재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부동산 문화재의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해외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외교관·열사 등과 관련된 유적들을 파악해서 현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곳에 가면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 팀장: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19세기 워싱턴에 있던 외국공관 중에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복원작업을 거쳐 재개관을 한 뒤 많은 전문가, 현지인들이 공사관을 찾았다. 이미륵은 한국, 독일의 우호적 관계를 증언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묘역 정비 정도는 마무리했는데, 현지 지자체와 협약을 통해 본격적인 홍보 작업을 해 나가려고 한다. 윤동주의 경우에는 시비를 세우고 낭송회를 개최하는 등 일본에서 열기가 상승하고 있다.
정리: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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