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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관광객 끄는 서울의 명소… 공공성 강화 ‘광장’ 역할 해야 [서울의 디자인 이야기]

입력 : 2019-06-25 08:00:00 수정 : 2019-06-24 21: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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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DDP, 공공공간의 새 미래를 그리다 /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DDP / 비정형 건축물로 미래 공간 여행하는듯 / 운영 콘텐츠·시민 휴식공간 등은 부족 /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워 / 파리 퐁피두센터·런던 테이트 모던… / 공공성 강화해 성공 거둔 대표적 사례 / DDP 키워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시민 삶·문화 향상 기여할 방향 찾아야
이나미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교수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여할 ‘디자인’의 역할을 중심으로, 시민을 위한 ‘광장’, ‘공원’의 역할을 통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다

2014년 3월, 우리나라의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과 지척에 세워져 서울 동대문 지역의 스카이라인을 완전히 새롭게 그리는 낯선 물체가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시착한 우주선’ 같다고 표현했던, 현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라 불리는 기묘한 건축물이 바로 그것이다.

비정형 건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가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란 의미를 담아 설계했다.

동대문과 패션 산업, 설계자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디자인은 DDP에 내재된 유전자(DNA)와 같아 DDP 정체성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나미 제공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주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미래의 어느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서울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하루 평균 2만9000여명, 연간 1060만여명이 방문하는 곳이고 2016년 중국인 700만명이 선택한 ‘한국의 명소 베스트 5’이며, 2015년 뉴욕타임스(NYT)가 소개한 ‘죽기 전 가봐야 할 52개 명소’ 중 하나인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공 공간으로서의 정체성

그러나 DDP가 ‘누구’에게 ‘왜’,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DDP란 공간이 지녀야 할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복합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즐길 만한 프로그램과 변변한 먹거리, 휴식공간을 찾기 어렵다. 전시장이라 하기에는 상시적 콘텐츠가 부족하며, 컨벤션을 위한 공간으로 보기에도 주변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공공 공간이라 하기에는 일반 시민의 관심사와 이해관계로부터 거리가 멀고, 전시 또한 유료 콘텐츠가 대부분이어서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다. 디자인을 테마로 차별화해 “디자인·창조 산업의 발신지”라 주장하고 있으나, 그 또한 모두의 공감대를 얻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당장에 길 건너 패션타운의 입주자들조차 이곳에서 어떤 디자인이 어떤 방식으로 창조적 발신을 담당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건축물이 지닌 세계적 명성과 품격을 경험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오는 건 분명한데, 그것이 서울 시민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는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 시민에게 DDP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국 런던의 미술관 테이트 모던의 모습.

◆공공의 기억

DDP의 탄생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 건물이 지어진 곳은 옛 동대문운동장(서울운동장)이 있던 자리로, 그 역사는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적으로 척박하던 시절 시민들에게 스포츠를 통한 오락과 휴식을 제공하던 종합경기장이 시설 노후화로 폐쇄가 결정돼 2007년 철거가 진행되면서 시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80년 넘는 세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공간의 ‘주인’이며 ‘사용자’인 시민들과의 긴밀한 공유와 공감의 과정이 소홀히 여겨진 채 일어난 일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시민들의 운동장이며 놀이터이기 전 이곳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었고, 나아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시장이 있었다. 6·25전쟁 이후에는 피란민들에 의해 구호물자 시장으로 이어졌고, 1958년 화재 이후 새로이 건물을 지어 시작된 평화시장이 오늘의 동대문시장의 효시가 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의 패션 특화 관광지”로 호황을 이루기도 했다. 그 저변에는 어떤 난관에도 굽히지 않는 풀뿌리 같은 봉제공들과 상인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이를 통해 패션타운으로서의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 냈던 동대문시장의 호황기를 추억하게 만든다.

프랑스 파리의 3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의 모습.

◆공공 공간으로서의 정체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

공공성 강화를 바탕으로 세계적 명성과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둔 공공 공간의 사례들은 DDP의 미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귀감이 될 만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다.

1969년 동대문 지역의 DDP만큼이나 이질적 외관으로 문제가 됐던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지어진 자리는 파리의 오래된 노천 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각계각층의 거센 반대를 이겨내며 퐁피두 센터가 오늘날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기까지는 조르주 퐁피두(1911∼1974)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그 중심 역할을 했다. 예술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누구나 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확고한 비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퐁피두 센터는 오늘날 파리 시민의 삶과 문화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서 현대 프랑스 문화 활동의 중심 역할은 물론, 근현대 예술 분야의 국제적 회전판 역할을 담당하며 파리 시민의 자부심이 됐다.

2000년 개관한 영국 런던의 미술관 테이트 모던도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템스 강변에 위치한 노후화된 전기 발전소를 선택해 원래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살려 “21세기 가장 성공한 현대 미술관”을 이뤄 낸 배경에는 ‘테이트 미술관 그룹’이란 민간 주체의 공공을 향한 숨은 노력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하며 지역사회의 관심과 애착, 공동의 노력을 이끌어 내 공공 공간으로서의 확실한 정체성을 구축하게 됐다. 이를 중심으로 유니레버, BP, UBS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공유가치 창출(CSV) 활동이 활발히 연계되기 시작했다. 2000년 개관 이후로 4000만명 이상이 방문했고, 영국의 3대 최고 인기 관광명소 중 하나로 런던에 연간 약 4억파운드(약 5923억원)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고 있다니 공공성 강화가 가져다 준 파급력은 놀랍기만 하다.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내 최적의 입지임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공원으로 방치돼 있던 브라이언트 파크의 대변신 사례도 흥미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1980년 공원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이 그간 어떻게 잘못 사용되고 있었는지, 사용자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정리한 ‘브라이언트 파크, 위협 또는 오락’(Bryant Park, Intimidation or Recreation)이란 제목의 보고서가 제시됐다. 이를 중심으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동선의 수정과 구조적 장치가 더해지고 시민들이 즐길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해 공원의 대변신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을 거뒀다.

1992년 재개장한 브라이언트 파크는 이제 뉴욕 시민이 자랑하는 ‘문화 충전소’가 됐고, 많은 기업이 이 공간 임차를 위해 기꺼이 큰돈을 지불한다니 상업적 성공은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도시 공원 브라이언트 파크.

◆DDP와 공공성 회복을 통한 정체성 확립의 과제

DDP 이름 안에 포함돼 있는 세 가지 키워드는 동대문, 디자인, 그리고 플라자다. 이곳의 지하철 역명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인 점을 감안한다면 ‘광장’을 의미하는 ‘플라자’(plaza)에 ‘공원’(park)의 의미를 함께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엮기만 해도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DDP의 정체성 확립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동대문이 시민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여할 ‘디자인’의 역할을 중심으로 시민을 위한 ‘광장’이며 ‘공원’의 역할을 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DDP란 건축물이 지닌 미래 지향적 특수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 줄 ‘문’(gate)이 돼 주지 않을까 싶다.

동대문의 과거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열어 줄 문, 서울과 세계를 이어 줄 문, 그 문을 어느 방향으로 열면 좋을지, 그 중심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DDP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나미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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