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유일 문화지구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제주의 서쪽에 자리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제주를 대표하는 공공 미술관이다.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90) 화백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김 화백은 “6·25전쟁 당시 피란 생활을 한 제주가 제2의 고향”이라며 제주에 작품 220점을 기증했다. 지난달 27일 미술관에서 만난 직원 김보인씨는 “선생님이 미술관에 애정이 많으셔서 서울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오신다”고 전했다.
김 화백에게 물방울을 그린다는 건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보내기 위함이다. 미술관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한자 돌아올 회(回) 모양인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 화백은 그 중심인 빛의 중정이란 공간에 분수를 설치해 물방울을 표현했다.
김창열미술관이 있는 곳은 도내 유일한 문화지구인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다. 면적 32만5100㎡의 광활한 이 마을에는 미술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33명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중 이명복(61) 작가는 2010년 마을에 정착했다. 제주 4·3사건에 천착해 제주의 전형적인 어머니들을 캔버스에 담고 있다.
예술인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동네는 자연스레 활기를 찾았다. 주민협의회 위원장인 배정현 갤러리 현 대표는 “물이 고이지 않고 숲이 많아 원래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다”며 “매년 가을에는 축제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은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 기념관과 제주 민화전시관, 저지 복합공방미술관, 꽃차 연구소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마을에 작업실을 둔 단색화 거장 박서보(88) 화백은 갤러리를 짓는다.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
제주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과 안도 다다오(78)의 작품을 비교해 가며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재일동포 이타미의 포도호텔과 방주교회, 안도의 본태박물관과 유민미술관이 대표적이다. 모두 자연과의 조화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1층 단층 구조인 포도호텔의 외관은 한 송이의 포도를 연상케 한다. 이타미는 제주의 오름과 집에 착안했다. 호텔 내부에는 작은 올레길을 만들어 문과 창문으로 열림을, 벽과 코너로 닫힘을 표현했다. 포도호텔에 있는 포도갤러리는 모든 작가들에게 무료로 대관해 주고 있다.
포도호텔과 가까운 방주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삼았다.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지붕은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반응한다. 날이 좋으면 푸른색, 어두우면 회색을 띤다.
본태박물관과 유민미술관은 콘크리트를 외장재로 노출하는 안도만의 건축 기법이 공통된 특징이다. 본태미술관에서는 멀리 산방산이 보이고, 유민미술관은 곳곳에서 섭지코지를 느낄 수 있다.
변준희 건축사는 “이타미 준은 지역성을 중시했고 안도 다다오는 자기 완결성을 중시한다”고 두 건축가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제주=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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