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 ‘작은 아씨들’(1868년 1부, 1869년 2부 출판)을 원작으로 한 10여 편의 리메이크 영화들 중 1917년, 1933년, 1949년 영화들을 통해 영화 안팎 세상의 변화를 느껴봤다.
30여 년이 흐르며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었고, 경제위기, 전후 미국 사회, 여성성에 대한 인식 등 영화에 반영된 시대 상황도 달라졌다.
‘작은 아씨들’ 영화나 TV드라마 리메이크는 계속되고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시간을 좀 건너 뛰어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들 위주로 비교를 해볼까 한다. 내용보다는 영화 밖 요소들을 중심으로.
요즘 관객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는 1994년 ‘작은 아씨들’(감독 질리언 암스트롱)과 이번에 개봉된 2019년 ‘작은 아씨들’(감독 그레타 거윅)이다. 국내에 개봉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편 사이에 한편이 더 있다. 2018년 ‘작은 아씨들’(클레어 니더프루엠)은 원작 소설 ‘작은 아씨들’의 1부 출판 기준 1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었는데, 현대판으로 리메이크 되어 나머지 두 편의 영화와는 달랐다.
1994년, 2018년, 2019년 버전 모두 원작 소설 이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세 편 모두 대거 여성 제작 인력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감독, 각본, 제작 등을 여성 영화인들이 담당했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던 1917년, 1933년, 1949년 버전의 경우 배우 이외에 여성 제작 인력의 참여 비중은 크지 않았다. 1933년과 1949년 영화의 각본을 쓴 사라 메이슨 정도가 눈에 띄는데, 남편 빅터 히어만과 공동으로 각본 작업을 했다. 두 사람은 이후 1949년 버전에도 공동 각본으로 참여했다.
1990년대 이후 버전의 각본은 모두 여성이 썼다. 1994년 버전 각본은 로빈 스위코드가 썼고, 2018년과 2019년 버전 각본은 감독들이 각본까지 직접 썼다.
1994년 버전과 2019년 버전의 무도 대표적인 할리우드 여성 제작자 데니스 디 노비가 제작했는데, 새로운 세대를 위해 다시 리메이크 할 때가 됐다며 2019년 버전 제작을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알려졌다.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시대적 변화가 읽히는 공통점이라 하겠다. 1994년 ‘작은 아씨들’ 국내 개봉 당시 신문 광고를 보면, ‘여자를 위한, 여자에 의한, 여자의 영화!!’라는 문구가 보이기도 한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는 각기 다른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가 만만치 않다. 여성이 직업도 재산도 갖는 것이 법적으로 통념적으로 모두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여성에게는 참정권도 없던 시기였다. 아버지, 남편, 아들이 투표하는데 굳이 어머니, 아내, 딸들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여성들에게는 이성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1840년대부터 미국 내에서는 본격적으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참정권은 1920년은 되어야 헌법 개정을 통해 주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참정권을 비롯해 많은 기회나 자격들이 제도적 차원으로 여성들에게도 주어지기 시작하지만, ‘작은 아씨들’의 제작 인력으로 참여하는 데 1990년대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다.
번역된 제목부터 조금 올드 하다가 느껴지는 ‘작은 아씨들’이 현재까지도 리메이크 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변화되어 왔으나, 하고픈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법이나 제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인식이나 문화의 문제일 수도 있다. 또 가난 때문 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작은 아씨들’은 모두 아카데미상과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었다. 1933년 버전은 각색상을 받았고, 1949년 버전은 미술상(세트)을 받았다. 1994년 버전은 여우주연상, 의상상, 음악상 후보로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고, 2019년 버전은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음악상, 의상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의상상을 수상했다.
오랜 기간 리메이크 된 덕분에 세상의 흐름을 영화 안팎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다음 버전도 기대해본다. 디테일은 달라져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해당 기사는 외부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