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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충돌 방지·생물다양성 보전… ‘시민과학자’가 나선다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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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06 20:00:00 수정 : 2020-06-07 0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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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읽는 ‘온라인플랫폼’의 힘 / 집단 지성 발휘하는 ‘네이처링’ / 앱 통해 누구나 ‘자연 모니터링’ 기록 축적 / 제비생태 탐구 등 1700여개 미션 개설 / 기후 변화·생태 문제 해결 정책마련 기여 / 정부, 민간과 협력 ‘K-BON’ 운영 / 전문기관·시민단체·동호회 등 500명 참여 / 2019년 총 3240종 1만6564건 데이터 확보 / 재원·인프라 부족… 지속성 등 보완 문제 / 해외 사례는 / 유럽 28國 참여 ‘소사이언타이즈’ 대표적 / 美 ‘글로브’ 1억4000만여개 데이터 축적 / 英 ‘주니버스’ 100만 참여… 빛공해 등 연구
‘연간 800만마리.’ 한 해 우리나라에서 건물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 투명창에 충돌해 폐사한 새의 수다. 하루에 어림잡아 약 2만마리의 새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전국 건물 유리창, 투명방음벽 등 총 56곳에서 조류 충돌 발생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총 378마리 조류 폐사체가 발견됐고, 국토 전체로 보면 투명창에 충돌해 폐사하는 새가 연간 800만마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토대로 당국은 지난해 2월 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대책을 수립했고, 5월에는 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지침서를 배포했다. 올해 역시 조류 충돌 방지 제품 성능 평가방안을 마련하고 방음벽 관련 지침 개정, 지자체 및 관계기관 업무협약 확대 체결 등 조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의 조류 충돌 방지 대책 수립에 근간이 된 조류 충돌 현황 조사는 ‘시민과학’의 힘이 모여 만들어낸 성과다. 시민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충돌로 폐사한 조류의 사체나 충돌흔(조류가 투명창에 부딪치면서 만들어진 흔적) 등을 제보했고, 이를 토대로 소수의 전문가만의 힘으로 수집하기 쉽지 않은 구체적인 데이터들을 모을 수 있었다.

 

시민과학이란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새로운 생물종을 발견하거나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시민과학 온라인플랫폼 네이처링을 통해 수집된 모니터링 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야생조류 충돌 현황’ 지도. 네이처링 제공

◆‘집단지성’의 결집체, 온라인플랫폼 ‘네이처링’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시민과학자들의 노력을 하나로 모으고, 이를 유의미한 데이터 형태로 만들어 정책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에는 ‘네이처링’(NATURING)의 역할이 컸다.

 

네이처링은 2014년 민간 벤처기업이 개발한 생물다양성, 생태분야 시민과학 온라인 플랫폼이다. ‘자연을 읽다, 세상을 잇다’라는 업체의 슬로건처럼 언제 어디서나 쉽게 시민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 및 검색할 수 있다. 더불어 이를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오픈네트워크다. 누구나 ‘시민과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일 네이처링에 따르면 2014년 플랫폼이 개발될 당시 313명에 불과했던 자연관찰자(시민과학자)는 2017년 1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 2만5443명에 이어 올해 6월 기준 약 3만여명의 사용자가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자연관찰도 2014년 1817개에서 2019년 36만6466개, 현재 약 46만여개가 기록됐다.

 

네이처링에 접속하면 실시간 시민들이 올린 자연관찰을 접할 수 있다. 처음 보거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동식물의 사진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또 다른 시민과학자가 ‘물음표’를 채워준다.

 

연구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개인, 연구기관, 환경단체, 교육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다양한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현재 플랫폼에는 약 1700개의 미션이 개설돼 있다. 멸종위기복원센터에서 개설한 야생생물 통합콜센터나 제주바다 생물·서울 도림천 관악산 생태 모니터링 등 범위와 주제가 다양하다.

 

네이처링 강홍구 대표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국의 생물다양성 탐사, 기후변화생물지표종 모니터링, 멸종위기종 분포파악, 지역 생물다양성 모니터링 등의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시민프로젝트는 대부분 개방적인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목적과 취지에 동의하는 누구나 시민과학자로서 참여할 수 있다”며 “과학자는 공간과 시간 측면에서 데이터 수집의 효율을 도모할 수 있고, 시민은 과학적 연구과정 참여를 통해 관련 지식을 얻고 생태계 보전 등 가치 있는 결과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처링에서 시민과학자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는 다양하다.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도 네이처링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도 많은 시민과학자들이 야생조류 충돌 현장을 제보하고 있어 대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상남도 '제비생태탐구 프로젝트' 모니터링 기록

또 다른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경상남도교육청이 진행한 생태교육 프로그램인 ‘제비생태탐구 프로젝트’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는 모니터링 기록이 오프라인 야장(현장에서 기록하는 수첩)으로 이뤄졌기에 대규모 인원이 참여한 프로젝트 진행상황 파악이 쉽지 않았고, 데이터를 취합하고 관리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2016년부터 해당 플랫폼을 통해 모니터링을 기록하면서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게 훨씬 용이해졌다.

 

◆‘K-BON’ 통해 시민과학 활성화

 

정부도 이 같은 시민과학의 잠재력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시민과학자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은 2011년 8월 ‘시민참여 한국 생물다양성 관측 네트워크’(K-BON)를 출범해 운영하고 있다.

K-BON은 국립생물자원관이 전문연구기관과 시민과학자, 환경 관련 동호회 등과 함께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모니터링 등을 통해 한반도 생물다양성의 변화 관측과 보전을 도모하는 시민과학 프로그램이다. ‘지구관측그룹’(GEO) 산하의 생물다양성 관측 그룹의 국가단위 시스템으로, 각국에서 이런 생물다양성 관측 네트워크가 활동 중이다.

 

올해 21개 생물 관련 시민단체와 동호회 소속 시민과학자 등 약 500명이 참여해 생물다양성 모니터링 데이터와 사진 등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총 3240종, 1만6564건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기후변화 생물지표 86종과 후보종 26종, 생태계교란생물 19종, 멸종위기 야생생물 60종 등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시민들이 네이처링을 기반으로 수집한 자료를 참고해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분포도가 업데이트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다양성이 취약한 지역을 확인하거나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 중 생물다양성 분야 대책 수립 시 기초자료로도 활용된다.

 

미래 시민과학자 양성을 위해 2016년부터는 K-BON 주니어도 운영하고 있다. 생물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모집해 해당 거주지역 중심으로 생물다양성 관찰 및 중요성에 대해 교육한다.

지난해 8월 K-BON에 참여한 시민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지리산 노고단 일대에서 야생 식물·곤충 관찰 등 합동조사에 나선 모습. 국립생물자연관 제공

시민과학이 우리나라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재원 부족과 취약한 인프라, 시민과학에 대한 지속성과 전문성 등을 보완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연구원에서 최근 발간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과학의 의미와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과학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프로젝트 진행하는 데 있어 장애물로 재원부족을 1순위로 꼽았고, 프로젝트의 지속성 미흡, 시민과학자에 대한 정책담당자의 인식 부족, 참여시민의 전문성 부족, 전문가와 시민과 커뮤니케이션 부족 등이 뒤를 이었다.

 

고재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민과학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민과학을 촉진하고, 시민과학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며 “시민과학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시민과학 플랫폼 및 기술 인프라 구축, 시민과학의 특성을 반영한 R&D 자금 지원, 교육훈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대표도 “최근 몇 년 새 시민과학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개인의 관심과 집단의 힘을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시민과학의 유용성이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라며 “성공적인 시민과학은 과학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함과 동시에 시민과 전문가 모두에게 보람과 성취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 등이 데이터를 쉽게 수집할 방편 또는 단편적인 편익만 취하는 형태가 아닌 지속적인 행동 변화를 유발하는 시민과학이 국내에서 자리 잡으려면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EU·美, 백서 발간 등 ‘시민과학 프로젝트’ 적극 지원

 

시민과학에 대한 인식이 낮고 정책 활용도가 활발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해외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시민과학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U는 과학을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 차원에서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시민과학 확산을 위해 2012년 10월부터 실시된 ‘소사이언타이즈’라는 컨소시엄은 시민과학에 대한 인식 확산에 기여했다. 유럽위원회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브라질의 기관 및 스페인의 사라고사대학과 협력한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약 1만2000명의 시민들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암세포를 이미지화하고 독감 발생지도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다.

 

소사이언타이즈는 시민과학을 위한 녹서(Green Paper)를 제작했고, 유럽시민과학협회(ECSA) 설립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ECSA는 유럽 시민과학 확산을 위해 조직된 비영리협회로 유럽연합 28개국이 넘는 나라의 200여명의 구성원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18세기부터 시민들이 날씨, 수질, 동식물을 관찰하는 시민과학 활동 역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시민과학의 예는 국가과학재단과 해양대기청, 국무성의 지원을 받아 미항공우주국(NASA)이 후원한 ‘글로브’라는 프로그램이다. 1995년 첫 시작을 바탕으로 2017년 기준 약 1억4000만개의 데이터가 축적됐다.

 

또 시민과학 방법론에 대해 고민해 온 미 연방정부는 2014년 ‘크라우드소싱과 시민과학 실천을 위한 연방정부 커뮤니티’(FedCCs)를 만들었다. 이들은 우드로윌슨센터와 함께 시민과학 프로젝트 활동을 돕는 일종의 창구(허브)인 웹사이트를 개발했다.

 

영국의 ‘주니버스’(Zooniverse)는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시민과학 플랫폼이다. 옥스퍼드대학교 천문학자인 크리스 린토트가 2009년 천문학 관련 사진 7만장을 웹사이트에 올리고 일반인들에게 분석을 요청했다. 7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사진이 단 하루 만에 분석이 완료됐다. 린토트 박사는 이를 계기로 그해 ‘대중이 참여하는 연구’를 표방하는 주니버스를 개설했다. 현재 암세포 이미지를 분석하거나 빛공해 측정연구를 위한 지리적 정보가 담긴 밤하늘 사진을 올리는 ‘다크 스카이 미터’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실시되고 있다.

 

독일의 연방교육연구부는 시민과학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인 ‘GEWISS’(Citizen Create Knowledge)를 2014∼2016년 진행했다. 더불어 독일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시민과학 활동가를 위한 지침서인 ‘모두를 위한 시민과학’을 발간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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