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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칼럼] ‘군바리’에 불과한 대한민국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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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3 23:22:05 수정 : 2020-09-13 23: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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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용기·명예 먹고 살아야
秋아들 의혹 되레 앞장서 비호
예비역들이 분노하는 이유 돼
다시 국민의 조롱 받는 신세로

나의 제자 겸 친구 누구는 술에 취하면 늘 군대 얘기다. 취기가 오르면 총번이 어쩌고 전투 가늠자가 어쩌고 하면서 군대 얘기를 끄집어낸다. 그러다가 결국엔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으로 시작해 “부모 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로 끝난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목청이 터지라고 외쳤던 군가, ‘진짜 사나이’다. 아무리 군대 얘기 그만하라고 해도 취하면 늘 그렇다. “혹시 방위 출신이 괜히 그러는 것 아니냐”고 놀리면 안 된다. 곧바로 거친 싸움이 된다. 핏발 선 얼굴로 최전방, 그것도 기갑부대에서 쇠파이프로 맞으며 고생했던 신산한 군 생활을 토해내고 우리는 곧 숙연해진다. 이게 대한민국 중·장년세대의 군에 관한 추억이다.

1980년대 군에 갔다 온 사람은 다 안다. 그 얼마나 가혹하고 비인간적이었는지를, 휴가가 끝날 무렵 귀대 일이 다가오면 탈영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본 기성세대는 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귀대는 오후 5시, 하지만 먹거리를 사 들고 대개 점심 때 들어간다. 시간에 맞춰 귀대하면 군기가 빠졌다고 막사 뒤 공터 집합이다. 집합이란 말은 곧 곡괭이 자루 구타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쓰라린 군 생활을 떠올리면 지금도 자기연민에 울컥해진다. 고단한 이등병 시절, 권력자를 지인으로 둔 전입 동기가 ‘따불 백’을 메고 서울로 가면서 “미안하다” 했다. 군에서도 바깥 정치권력이 얼마나 위력을 떨치는지를 뼈저리게 느낀 그날 밤, 나는 서러움과 자학 속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

그 시절 군대는 그야말로 “SSKK”,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야 했다”. 고된 하루가 끝나면 군과는 전혀 무관한 엉뚱한 임무가 떨어졌다. 중대장 리포터를 대신 쓰는 것이다. 그 당시 중대장급 장교들은 대개 인근 대학의 야간석사과정에 다녔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전공도 무관한 리포트 써준다고 밤잠을 설쳤다. 대학물 먹은 게 죄였을까? 어느 날 무시무시한 보안부대의 지시에 따라 매일 밤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영어로 편지를 써야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을 호소하는 편지다. 물론 착한 어떤 민간인처럼 썼다. 이쯤 되면 기성세대의 군 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평소 말이 없던 남자도 군대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많다. 같은 내무반 전우가 소총으로 자해하던 모습을 지켜본 끔찍한 경험도 있다. 분실된 총기를 찾으려고 전 부대 화장실 인분을 인근 논밭에 늘어놓고 대검으로 찌르며 찾던 일이 어제 같다. 물론 총기분실 사고가 발생한 그해 반년간 휴가는 물론이고 외출, 외박까지 금지됐다.

그런 혹독한 군 생활을 지탱해 준 것은 휴가였다. 그래서 휴가만을 기다리며 모질고 고된 군 생활을 버텨냈다. “맘껏 때려라,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두들겨 맞으면서 휴가와 제대를 기다리며 외쳤던 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쓰라린 군 생활도 이제 나에게는 달콤한 추억에 가깝다. 그런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폭발하는 것은 추미애 장관의 아들 때문이다. 추 장관의 아들은 ‘아프다’며 열흘 휴가를 낸 뒤 또 한 차례 9일을 연장했다. 군 복무 중인 일개 사병이 20여일 병가를 낸 것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 또 복귀하지 않고 전화로 휴가를 연장했다. 대한민국 예비역들이 분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추미애’의 저질스런 행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이 과정에서 분노케 하는 것은 검찰과 군이다. 이미 권력의 개로 전락한 검찰은 차치하고라도 군의 태도는 무척 실망스럽다. 당당하게 사실을 밝히면 그것으로 군의 역할은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 앞장서 모호한 설명으로 추 장관을 비호하는 태도는 역겨움 그 자체다. 불쌍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군을 ‘군바리’라며 경멸해 왔다. 누구는 군부독재를 경험한 데서 오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의 시대, 그렇게 핑계 대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군은 용기와 명예를 먹고사는 조직이다. 그래야만 그 오랜 세월 국민에게 조롱받는 ‘군바리’ 신세를 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예비역들은 새삼 절망하게 된다. 대한민국 군은 여전히 ‘군바리’에 불과하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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