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 맞나” 질의엔 “수사 중 사건이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性) 관련 추문으로 공석이 된 서울·부산시장을 뽑기 위해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 기회”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은 5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성인지 관점에서 838억원의 선거비용이 피해자들이나 여성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봤느냐’는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를 받자 “국가에 큰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성에 대해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역으로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과 제2도시인 부산의 시장직이 성 추문으로 공석이 된 초유의 사태에 대해 여당의 책임론이 불거진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전당원 투표 끝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현행 당헌 규정을 개정해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야권은 재보궐 선거에 세금 838억원이 투입된다는 점을 들어 여당의 후보 공천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장관의 답변을 들은 윤 의원은 “838억원이 학습비라고 생각하느냐”며 “성인지 감수성을 위해 전 국민 학습비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이 장관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희가 국가를 위해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윤 의원은 “장관 참 편하다”면서 “저는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드는 838억원이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정책 방향과 역행한다고 보는데 장관은 순행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그걸 변명이라고. 이 정부를 대변해서 할 대답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의원은 “박 전 시장과 오 전 시장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냐”고 물었다. 이 장관은 처음엔 답변하지 않다가 거듭된 질의에 “수사 중 사건의 죄명을 명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피했다. 윤 의원은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분이 대한민국의 여가부 장관 맞느냐”며 “가해자 편에 서서 문재인 정부를 욕되게 한다”고 비판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 정현백 전 장관은 탁현민 사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에 대해 ‘권력형 성범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다”며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아니면서 수사 중이라 말 못하겠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는데 여가부만 거꾸로 간다”고 덧붙였다.
이후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여성이 아닌 여당을 위한 장관”이라며 이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황규환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대체 여성가족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그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하는 발언”이라며 “명백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수사 중인 사건’ 운운하며 피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국민 예산을 들여 치르는 보궐선거에 대해 피해자의 아픔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새까지 민주당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고 비판했다.
황 부대변인은 “성폭력 피해를 입에도 올리지 않으며 피해자에게 N차 가해를 하고, 정치적 욕심을 위해 당헌까지 고쳐가며 선거에 결부시킨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라면서 “여당의 후안뮈를 감싸기 위해 ‘학습기회’라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 이 장관은 여가부 장관이 아닌 N차 가해자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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