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 교수 등 관련서 잇단 출간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국수’ 중에서)
시대의 암울이 더위를 절망스럽게 쳐올리던 1937년 8월, 학생 윤동주는 도서관에 앉아 ‘국수’를 포함해 백석의 시를 한자 한자 원고지에 옮겨 적고 있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필사’를 매개로 백석의 불꽃이 윤동주에게 옮겨붙는 과정을 예민하게 포착해 신간 ‘백석과 동주’(아카넷)를 펴냈다. “베껴 쓴 텍스트만이 텍스트에 몰두하는 사람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는 독일 벤야민의 ‘베껴쓰기(die Abschritt)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두 시인의 자취와 작품을 더듬고 비교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잼’과 도연명과 ‘라이넬·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
위의 시는 잡지 ‘문장’ 1941년 4월호에 실린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의 일부다. 이는 같은 해 11월 나온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마지막 부분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문학평론가인 이상숙 가천대 교수의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삼인)은 광복 후 고향인 북한 정주에 정착한 백석의 문학 활동을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백석의 북한 문학활동을 3개 시기로 구분해 살핀다. 즉 소련문학 번역에 몰두하던 1940년대 후반부터 1955년까지의 시기, 스탈린이 죽고 나서 ‘소련 해빙기’에 힘입어 북한 문학계에 훈풍이 감도는 가운데 활발하게 창작에 임하던 1956∼1958년, ‘사실상의 숙청’을 당해 양강도 삼수에 ‘현지 작가’로 파견된 1959∼1962년까지 시기로 구분한다. 특히 두 번째 시기 백석은 아동문학과 시단에 만연한 도식주의를 비판하고 ‘시정(詩情)’과 ‘정서’, ‘생활’ 등을 살려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자는 1962년 이후 백석이 문학적으로 침묵한 것에 대해 ‘침묵 역시 발화’라는 견지에서 동의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는지, 아니면 순수한 창작 의지와 능력의 고갈 때문이었는지 쉽게 단정 짓지 않는다.
백석 열풍이 올해에도 거세다. 스스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고 했지만, 작금 그는 가장 인기 있는 현대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와 그의 시를 다룬 논문과 평론이 거의 1000편에 이르고 관련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인기다. 이미 지난여름 작가 김연수가 백석이 북한 문단에서 사라진 마지막 7년간을 집중 조명한 ‘일곱 해의 마지막’을 펴냈다.
김용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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