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일체론’·‘중화민족 다원일체론’ 제시
티베트·몽골 향한 ‘서남·몽골공정’ 이어
고구려·발해 역사 편입용 ‘동북공정’ 추진
‘동북공정’ 한국 항의하자 중단 밝혔지만
온라인·국제사회 인증 등 통해 침탈 계속
고구려·발해를 中 영토에 포함하기 위해
만리장성 길이 엿가락처럼 늘여 망신살
최근엔 김치·한복까지 자국 것으로 홍보
유튜버들이 논란 키우고 中 정부가 정리
中 거짓 주장 반복 땐 진실로 둔갑 우려
우리도 적극적 외교 대응·학계 연구 시급
“역사 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이 진실에 부합되지 않으며 이는 중국 역사학자들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데 기인한다.”
중국 마오쩌둥 전 주석의 동지이자 중국인에게 존경을 받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가 1963년 6월28일 중국을 42일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정리한 ‘저우언라이 총리의 중국·조선 관계 대화’라는 제목의 중국 정부 발행 문건에 실린 내용이다.
저우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한민족은 고대부터 중국 동북부에 거주했으며 발해는 한국사의 일부분”이라며 중국 국수주의 사학자들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 왜곡을 통렬히 비판했다.
50여 년이 흐른 현재 중국 공산당을 이끄는 지도부와 초기 지도부의 한국 및 중국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국수주의 사학자들을 비판하던 지도부의 모습 대신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현 지도부에 이르러 역사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통한 지배 체제 강화 수단이 되고 있다. 왜곡은 역사를 넘어 문화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어 자칫 중국의 힘의 논리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삼킬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중국 지배 체제 강화 수단 전락한 역사
중국 공산당이 1982년 12월 제5차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 때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채택하면서 체제 강화를 위한 역사공정은 본격 시작됐다. ‘중국 현재 영토에 존재했던 민족·역사는 모두 중화민족의 일부’라는 중화민족 이데올로기를 창조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학문적으로도 1986년 장보취안의 ‘중화일체론’, 1988년 페이샤오퉁의 ‘중화민족 다원일체론’ 등을 통해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다양한 기원이 있지만 교류를 통해 중화민족으로 일체화됐다’는 이론이 제시됐다.
중국은 티베트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1986년 ‘서남공정’, 네이멍구에 대한 영토 분쟁을 막기 위해 1995년 몽골에 대한 ‘몽골공정’을 벌인 후 2002년 신장위구르 지역의 독립을 막기 위한 ‘서북공정’과 고구려 및 발해 역사를 중국 민족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했다. 대부분의 역사 공정들은 중국 영토 내 일이고, 국력의 차이 등으로 중국 뜻대로 흘러갔다.
단, 동북공정은 한민족 역사와 직접 부딪쳤고 한국의 항의가 이어지자 중국은 표면적으로 2007년 동북공정 중단을 밝혔다. 하지만 끊임없이 온라인, 국제사회 인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 침탈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북공정의 정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이다.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공정)’란 의미다.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설명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당나라에서 만들어져 신라로 전해졌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는 대다라니경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억지는 당연히 모순을 불러온다. 주변 국가의 역사와 부딪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마저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고무줄이 돼 버린 만리장성 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6300㎞였던 만리장성 길이는 2009년에는 8851㎞로 늘었다가, 불과 3년 후인 2012년엔 2만1196.18㎞로 두 배 넘게 증가한다.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영토에 포함하려 애초 ‘동쪽 허베이성 산하이관(산해관)에서 서쪽 간쑤성 자위관(가욕관)’까지였던 만리장성 길이를 엿가락처럼 늘린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구간에선 없던 성벽을 시멘트로 급조해 망신을 샀다.
한족이 세운 송나라의 충신과 간신이 뒤바뀌는 일도 있었다. 여진족 금나라 공격에 맞서 싸운 악비는 굴종파로 분류되는 진회의 계략 탓에 처형됐고, 송나라는 금나라에 항복했다. 이후 항저우에 있는 악비 사당에 진회가 무릎 꿇고 있는 조형물이 세워졌는데 방문객은 악비를 존경하고 진회를 경멸하는 의미로 이 조형물에 침을 뱉었다. 하지만 동북공정 이후 이들의 처지는 ‘내부 전쟁을 막으려 송과 금의 타협을 이룬 진회’와 ‘대립을 키운 악비’의 구도로 바뀌고 있다.
◆역사·문화 공정 지속… 대응 논리 만들어야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정도로 힘이 강해지면서 체제 강화를 위해 자국 역사와 모순되더라도 역사 공정을 지속하고 있다. 확인이 힘든 과거뿐 아니라 너무 자명한 최근의 역사도 뒤틀고, 심지어 한복과 김치 등 고유 문화까지 자국 것으로 편입하려 한다. 특히 네티즌이나 유튜버 등이 논란을 키우면 분위기를 보고서 정부가 이를 정리하는 모양새를 반복하고 있다.
중국 네티즌은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0월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플리트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한국과 미국의 고난의 역사”라고 밝힌 소감을 트집잡았다. 6·25전쟁 참전은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로, BTS의 발언은 중국의 ‘국가 존엄’을 해친 것이라며 발끈한 것이다. 국제적, 역사적으로도 남한을 침공한 북한을 막기 위해 유엔군이 참전한 불과 70년여 전 일을 자신들만의 논리로 공격한 것이다. 양국 간 문제가 불거지고 미국 등 외신에서도 문제 삼자 그제야 중국 외교부는 “평화를 아끼고 우호를 도모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치 역시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문화로 알리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환구시보 등 중국 애국주의 매체들은 지난해 11월 파오차이(중국 채소절임)의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 인증 소식을 전하며 “한국 김치도 파오차이에 해당하므로 이제 우리가 김치산업의 세계 표준”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엔 유명 음식 유튜버 리쯔치와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온라인에 올리는 등 김치를 중국 것인 양 오해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다. 한국 네티즌이 항의하자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는 “자신감이 없으면 의심이 많아지고 갖가지 피해망상이 생기는 것”이라며 “김치는 중국 5000년 역사의 한 획이고, 우리는 이러한 문화유산과 중화민족의 창조 정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게임 ‘샤이닝 니키’ 한국판에 등장한 한복 아이템에 대해 한국과 중국 이용자가 그 기원에 대해 논쟁을 벌이자 중국 게임사는 ‘중국 기업으로 우리의 입장은 조국과 일치한다’는 입장을 내고 한국판 게임을 종료했다. 중국 드라마에서도 한복을 자국 전통 복장으로 소개하거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반복적으로 제기해왔다.
중국의 주장이 거짓이라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어느 순간 진실인 양 둔갑할 우려가 있다. 특히 중국 역사 왜곡의 대상이 되는 장소가 자국 영토이기 때문에 불리한 역사 자료를 감추거나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중국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중국 지린성 룽징 마을 생가 표석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아리랑’은 조선족이 부르는 노래이기에 중국 문화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를 시도한 전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의 ‘고고학 영향력 강화’ 지시는 중국의 역사 공정이 더 강화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공산당 중앙정치국 고고학 관련 집단학습에서 “고고학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정신적 힘으로 고고학 성과에 대한 발굴·정리·해석 사업을 잘해야 한다”며 “국제 고고학계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화문명 탐원공정’ 등을 잘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탐원공정이란 중국 문명의 시원을 캐는 프로젝트지만 실제는 한족의 역사인 황하문명(기원전 4000년)보다 더 오래된 동북부 요하 문명 등을 중국 역사로 편입시켜 중화 문명이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 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중국은 공산당과 학계 외에도 네티즌과 인플루언서 등이 합세해 갈수록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역사 공정을 펴고 있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 확대 외에 중국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학계의 연구가 시급하다, ‘예민한 외교관계’ 등 이유로 소극적 대응을 해온 정부의 전향적인 적극 외교가 학계 연구 성과와 시너지 효과를 내야만 우리 역사를 온전하게 후대에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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