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출입기자로 5개월 남짓 법정을 드나들다보니 피해자가 법의 구제를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가해자가 징역 몇 년을 받는지 궁금해하지만, 그 뒤에 이뤄지는 피해자들의 고군분투에는 별 관심이 없다. 가해자가 중형을 확정받는 걸로 사건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형사사건엔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유죄를 받더라도 피해자들은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간다. 피해자 중 일부는 굳은 결심을 하고 민사재판에 뛰어든다. 민사재판에서 상대방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 또한 쉬운 길은 아니다.
여기 700만원의 거금을 내고 주사를 맞은 3000여명의 환자가 있다. 무릎 골관절염이 심해 3개월 이상의 약물치료나 물리치료에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던 무릎 골관절염 3기 환자들이다. 이들이 맞은 주사는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 환자들은 연골 재생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고 인보사를 한 줄기 빛으로 여겼다.

1년 5개월간 유통되던 인보사는 2019년 3월 돌연 판매 중지된다. 1액과 2액으로 이뤄진 인보사의 2액 성분이 연골세포가 아닌 형질전환 신장세포(GP2-293)란 사실이 드러나서다. GP2-293은 증식성이 강해 종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몸에 투여하는 약물에는 원칙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사를 맞았던 피해자들은 분노했다. 3000여명 중 901명이 3차에 걸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소를 제기한 건 2019년이지만 변론 병합, 형사·행정재판 결과 대기 등의 이유로 이달이 돼서야 재판부 3곳 중 2곳에서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지난 14일과 15일 하루 간격으로 열린 변론기일에서 두 재판부는 상반된 판단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관련 형사·행정재판 1심 판결이 나왔음에도 향후 재판 결과를 보겠다며 기일을 추정했다. 추정은 ‘추후 지정’의 약자다. “원고들이 첫 변론기일까지 2년가량의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원고 측 변호인의 말은 공허한 외침이 됐다. 하루 뒤 변론기일을 연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강민성)의 생각은 달랐다. 민사21부는 민사재판은 민사재판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보고 다음 변론기일을 오는 6월10일로 정했다.
피해자들은 같은 시기, 같은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어느 재판부에 본인 사건이 배당됐는지에 따라 결과를 받아보는 시기가 한참 달라지게 됐다. 민사15부에 사건이 배당된 521명의 피해자들은 앞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게 될 것이다. 코오롱생명과학 임원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과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의 1심 재판, 인보사 품목허가취소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항소심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형 변호인단을 꾸린 대기업이 재판을 순순히 진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법원장을 지낸 한 법관의 말이 귀에 맴돈다. “형사재판을 보고 나서 민사재판을 하는 건 편하지. 하지만 형사재판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이걸 계속 가지고 있는 게 과연 옳으냐는 거야. 민사재판을 진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그걸 토대로 판단할 수 있을 텐데….”
이희진 사회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