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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욕망

입력 : 2021-05-04 05:00:00 수정 : 2021-05-03 20: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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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시대의 얼굴…’ 특별전

英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78점 전시
르네상스 인본주의 영향 ‘정체성’ 강조

흑백 대비 의상 입은 엘리자베스 1세
소품에도 왕조 계승·강력한 왕권 표현

찰스 2세의 가장 유명했던 情婦 넬 귄
속옷 차림으로 유혹하는 표정 인상적

전통시대 초상화를 대하는 조선과 서양의 차이는 분명했다. 조선에서 초상화는 궁궐의 진전이나 가문의 사당에 보관하다 특별한 날에나 꺼내어 보는 조상숭배, 의례용 봉안물의 성격이 강했다. 반면 서양은 적극적으로 알리고 감상했다. 16세기 화가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모든 집에는 많은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개인 정체성이 강조됨에 따라 “특정 개인임을 인식할 수 있는 이미지가 크게 각광받게” 된 결과였다.

이는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의 차이를 낳았다. 어떻게 보일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조선의 초상화는 대상의 성품, 인격,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집안 곳곳에 내걸리고, 때로는 홍보수단으로 사용된 서양의 그것은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가 중요해 대상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시대의 얼굴-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 출품된 두 여성의 초상화는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대영제국’의 토대를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찰스 2세의 가장 유명한 정부(情婦)였던 넬 귄의 초상화는 각자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1856년 설립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기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소장품 78점을 빌려 와 열리는 전시회다. 서양의 초상화 전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들을 각자의 대표 이미지를 통해 교감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대영제국’의 토대를 쌓은 것으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에는 왕조의 계승과 강력한 왕권이 표현되어 있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제공

◆초상화로 표현된 엘리자베스 1세의 권력

엘리자베스 1세는 아버지 헨리 8세와 함께 “자신의 공적 이미지를 통제하고 이를 후세에까지 이어지게 한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군주로 꼽힌다. 1757년경 니컬러스 힐리어드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는 “대상을 닮아야 한다는 소박한 원론보다 권력 과시, 인격의 이상화가 더 중요한 목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검은색, 흰색으로 명확히 대비되는 그녀의 옷은 “불변과 순수라는 이미지의 ‘처녀 여왕’”을 드러낸다. 가슴에 걸린 불사조 모양의 보석과 손에 쥔 붉은 장미는 왕조의 영원한 계승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되지는 않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를 담은 여러 점 중 하나인 ‘디칠리 초상화’는 노골적인 신격화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영국 지도를 밟고 서 있는 모습으로 강력한 왕권을 표현함과 동시에 햇빛과 폭풍이 공존하는 배경을 넣어 자연까지도 다스리는 존재처럼 묘사했다. 워번 사원 소장품인 ‘아르마다 초상화’는 ‘무적 스페인 함대’를 몰아낸 영국의 함선들이 순항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영국 제국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초상화”로 통한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왕자의 초상화는 엘리자베스 1세의 그것과는 다른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찰스 왕자는 왕위에서 축출된 제임스 2세의 손자로 유럽의 여러 왕실을 전전하며 왕위 복권을 노렸던 인물이다. 1745년 군대를 일으켜 전쟁까지 벌이지만 실패했고 1788년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이력의 그가 왕실의 예복과 갑옷을 차려 입고 그린 초상화는 거창하기는 해도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둘렀던 엘리자베스 1세의 그것과 달리 권력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왕의 정부’ 악명까지 활용한 넬 귄의 명성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소장품 선택은 단순히 미술품을 고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초상화 주인공의 삶에 대한 평가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넬 귄의 초상화가 이 미술관의 소장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중대 과실이나 실수가 모든 면에서 인정되어도 이것이 (초상화 수집을) 배제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창립 초기 소장품 입수 규정에 덕분일 터다.

넬 귄은 영국의 공개 연극 무대에서 공연한 최초의 여성이며 찰스 2세의 수많은 정부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인기가 많았던 인물이다. 런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극장 관객에서 오렌지를 파는 일 등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다 배우로 명성을 쌓았고, 궁정에서 펼친 연기와 미모, 재치로 찰스 2세의 눈에 들었다.

1680년경 사이먼 버렐스트가 그린 초상화는 그녀가 자신의 명성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려 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넬 귄은 “왕의 정부라는 자신의 악명을 십분 활용해 성적 매력을 강조한 일련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찰스 2세의 정부로 유명했던 넬 귄의 초상화는 속옷 차림과 보는 이를 유혹하는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제공

그림 속 그녀는 속옷 차림이다. 목선과 어깨는 물론 옷을 제대로 여며지 않아 가슴도 드러난다. 표정이 특히 노골적이다. 불그스름한 볼, 그보다 약간 더 짙은 입술과 그림을 보는 사람을 유혹하려는 듯 게슴츠레하게 뜬 눈은 초상화를 그린 넬 귄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찰스 디킨스의 초상화에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알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당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던 디킨스는 세 번째 소설 ‘니컬러스 니클비’를 연재하던 1839년 막역한 사이였던 대니얼 매클리스에게 부탁해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 속에서 디킨스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양복에다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힌 스카프를 두른 멋스러운 문인이다. 박물관 양수미 학예연구사는 “나중에 판화로도 인쇄되어 니컬러스 니클비의 초판본 권두 삽화로 사용되었고, 왕립미술원에도 전시되어 명성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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