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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파리오페라단의 별 박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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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0 11:00:00 수정 : 2021-07-20 1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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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러시아 마린스키·볼쇼이발레단이 친숙하지만 춤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무용단은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이다. 1669년 설립된 POB는 왕 스스로 27번이나 발레리노로 무대에 섰던 루이 14세 때부터 이어져 온 프랑스 발레 문화의 정점이자 자존심이다. 마린스키발레단의 바가노바 학교가 러시아 발레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면 프랑스에선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가 8세 때부터 무용수를 길러낸다. 졸업생 중에서도 엄선된 무용수 일부가 POB 단원으로 무대에 서게 된다. POB 단원은 다시 카드릴(Quadrille·군무)→코리페(Coryphees·군무 리더)→쉬제(솔리스트급)→프르미에 당쇠르(제1무용수)의 엄격한 승급제도 아래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하며 극소수만이 ‘에투알(Etoile·수석무용수)의 영예를 차지한다.

 

POB 352년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출신 에투알이 된 박세은은 19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력서상으로는 최고에 도달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커리어로는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갔다. 그런데 보여줘야 할 춤이 아직도 너무 많다고 관객이 보셔야 할 춤도 너무 많아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프랑스에 와서 하나둘씩 저를 정말 좋아하는 프랑스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꽃도 보내주시고 손편지도 많이 보내주셔서 굉장히 정말 너무 감동적이거든요. 그런 분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춤을 출 때 사실 다른 생각 안 하고 조금 더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 춤을 추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고, 프랑스 발레계에서도 ‘큰 에투알’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이 된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박세은은 “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한데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걸 찾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 에투알은 그 상징성만큼이나 받는 대우도 특별하다. 에투알 승급 이후 박세은은 전용 탈의실이 생겼고 공연 때는 전담 수행 서비스도 받는다. 더 큰 변화는 자신의 예술을 발레단에서 구현할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역시 에투알 출신인 오렐리 뒤퐁 POB 예술감독이 승급 직후 만난 박세은에게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어떤 파트너·안무가와 일하고 싶은지 물어봤을 정도다. 이전까지 ‘배역은 위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던 박세은에겐 당황스러웠을 정도다. “휴가 중에도 감독님에게 메일이 왔는데 ‘OO작품을 너에게 주고 싶은데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저의 의견을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에투알 되고 가장 크게 바뀐 점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시작한 발레 인생의 정점에 오른 박세은은 ‘에투알’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간절함’과 ‘인내심’을 꼽았다. “승급 발표에 동료들, 선생님들, 그리고 무대 스태프도 큰 박수를 보내주며 함께 기뻐해 줬는데 단순히 제가 실력이 뛰어나거나 춤을 잘 춰서가 아니었어요. 사실 한국 발레는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교습법)를 기본으로 하는데 저는 거기서 정상까지 갔다가 POB에서 프랑스 춤을 바닥부터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처음 프랑스에서 제 춤을 보고 ‘감정이 없고 기술적으로만 뛰어나다’와 ‘프랑스인을 제치고 큰 무용수가 될 것’이다로 평이 나뉘었어요. 프랑스가 자신들 춤에 자부심이 굉장히 센데 처음부터 프랑스 춤을 다시 배우는 데 10여년이 걸렸어요. 그것에 대해서 박수를 많이 보내준 것 같습니다.”

 

10년전 준단원 신분으로 입단했던 박세은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2분짜리 무대’를 떠올렸다. “POB가 굉장한 계급제도인데 승진을 하려면 1년에 한번 극장 무대에서 2분짜리 솔로를 두개 춰야하는 승진 시험이 있어요. 사실 예술을 2분으로 평가하는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POB에서 제가 테크닉만 뛰어나다는 오해를 받았는데 제 춤과 추구하는 예술 방향을 보여주기에는 2분은 충분하지 않았죠. 제 춤을 출 수 있을 때까지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했어요. 어릴 때부터 발레를 쭉 하면서 ‘충분히 연습만 하면 돼’이랬는데 ‘이게 맞나’, ‘내가 뭘하고 있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굉장히 많이 던졌습니다. 결국 러시아 춤이나 프랑스 춤이나 보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게 중요하더라고요. 스스로 그 답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후배 무용수를 위한 조언을 묻자 박세은은 바로 “요즘 후배들은 너무 잘해서 제가 뭐 별로 해줄 얘기가 없어요”라더니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예술이라는 게 자기와의 싸움이거든요. 그런데, 가끔 ‘나와의 싸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인 경쟁자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본인이 힘들어요. 그런 경우라면 조금 더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하고 예술을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어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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