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15년 청년들에게 커뮤니티, 아이디어 공간을 대관해주자는 취지로 탄생한 ‘무중력지대’가 실제로는 민간기업의 자체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고 일부 청년단체들이 용역을 나눠먹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등 사유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무중력지대’에 대한 전반적인 감사에 나선 상태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13일 무중력지대의 민간 위탁 과정 및 예산 등에 대한 청년 공간 전반적인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동작, 양천, 도봉, 성북, 서대문, 강남, 영등포 등 7곳에서 운영 중인 무중력지대는 서울시가 예산을 투입해 공간과 시설을 마련하면 민간기업이나 단체가 이를 수주 받아 청년들에 대관하거나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무중력지대 조성과 운영에는 최근 5년간 238억72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오픈놀·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도봉문화재단·협동조합 성북신나 등의 협동조합·비영리법인·민간 기업 등이 위탁 받아 운영 중이다. 시는 민간의 전문성을 이유로 공간을 위탁 운영했지만 실제로는 특정 민간단체가 무중력지대 사업을 독점한 뒤 유관 단체간 이익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이날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는 우선 무중력지대를 운영하는 위탁업체들이 박 전 시장과 인연이 있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의혹과 일부 업체의 인건비 착취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다. 민간업체인 A사는 2018년부터 2년 연속 홈페이지, 온라인 플랫폼 제작 등 무중력지대 관련 7건의 용역을 수주했다. 성과는 미비했다. 시는 무중력지대 플랫폼 ‘페이버릿미’에 1990만원, ‘하이컨셉 플랫폼’에 1660만원을 투입했으나 현재 둘 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A사의 대표는 박 전 시장이 사무처장으로 있었던 참여연대 출신으로 희망제작소, 아름다운가게 등 홍보에도 참여해 일감을 몰아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주민참여예산으로 탄생한 무중력지대 성북은 예산 발의자와 운영을 맡은 수탁자가 동일했다. 무중력지대 성북은 한 협동조합에서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데 창립자이자 이사장인 B씨는 2016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무중력지대를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으로 발의했다”며 “청년단체들이 같이 좀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무중력지대 성북은 당시 5억원의 주민참여예산이 편성됐고 이후 올해까지 15억원의 민간위탁금이 교부됐다. B씨는 전효관 전 청와대 문화비서관과 문화연대에서 함께 활동한 인사로 알려졌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무중력지대를 자체사업 홍보에 이용했다는 의혹도 감사 대상이다. 무중력지대 서대문과 강남은 플랫폼개발 기업인 C사가 각각 2018년, 2019년부터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C사의 대표는 무중력지대 서대문의 센터장, 무중력지대 강남의 운영위원을 겸임하며 프로그램 운영에도 깊숙히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 관련 ‘넥스트 아트페어 서포터즈’, ‘NFT포럼’, ‘활주로 프로젝트’ 등 C사 사업들은 무중력지대에서 진행됐다. 이 회사 대표는 문화연대 출신으로 박 전 시장과 ‘남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각계인사 시국선언’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 무중력지대 운영을 위해 C사에 위탁한 금액은 29억원에 달한다.
무중력지대 영등포 운영업체는 담당 직원에 영등포구 별도사업인 ‘영등포 청년 네트워크’ 운영 업무를 지시해 인건비 중간착취 논란도 불거졌다. 이후 무중력지대 영등포는 다른 업체가 위탁해 운영 중이다.
무중력지대 월평균 방문자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출범초기인 2016년 월평균 방문자는 5550명 수준이었으나 2019년 2730명, 2020년 770명으로 감소했다.
시는 무중력지대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성격이 유사한 청년센터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무중력지대 사업의 민간위탁 과정과 예산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수년 동안 서울시의 일부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은 결과적으로 ‘자기 사람 챙기기’에 불과했다”며 “다가올 국정감사를 통해 해당 사업뿐만 아니라 공정성을 훼손한 사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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