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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감성 그윽한 삼례책마을로 떠나는 가을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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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0 08:00:00 수정 : 2021-10-09 11: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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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아기요정 따라 동화나라로/일제수탈 상징 양곡창고 문화예술촌 변신/북하우스·북갤리·박물관 갖춰/추억의 책·LP 레트로 감성 가득/지난 봄 그림책 미술관 새 식구돼/‘요정과 마법의 숲’ 등장인물 조형작품 배치/마치 책읽는 기분으로 투어

그림책 미술관 날으는 요정

 

하늘을 날아다니는 깜찍한 요정. 나무와 꽃들이 말을 거는, 살아 움직이는 마법의 숲. 이불 끌어올리는 찬바람 부는 스산한 가을 밤, 어머니 무릎 베고 누워 귓가에 속삭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빠져든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동화책 세상은 얼마나 신비롭던지. 요정 손잡고 하늘을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스르르 잠이 들곤 했었지. 삼례 그림책미술관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지는 동화 속 세상이 아련한 기억으로 이끈다.

삼례책마을 북하우스

 

삼례책마을 조형물

 

#종이 감성에 푹 젖는 삼례책마을

 

전북 완주를 가로지르는 만경강.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기후는 강 주변에 만경평야를 펼쳐 놓았고 가을이면 온통 풍성한 황금들녁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만경평야는 일제강점기 군산, 익산, 김제와 함께 양곡 수탈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가 1926년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삼례양곡창고는 이런 아픈 역사를 전한다. 식민 농업 회사인 전북농장·조선농장·공축농원과 함께 수탈의 전위대였으며, 1914년 삼례역이 문을 열자 철도를 이용해 군산으로 양곡을 옮기는 기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삼례 비비정마을까지 바닷물이 유입돼 배로도 양곡 수탈이 이뤄졌다.

 

양곡창고를 개조한 그림책 미술관

 

북하우스 어린왕자 조형물

 

2010년까지 양곡창고로 사용되던 이 일대는 2013년 ‘삼례문화예술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모모미술관, 디지털아트관, 소극장 시어터애니가 자리 잡으면서 수탈의 상징에서 문화예술 중심지로 거듭났다. 빛바랜 세월의 흔적이 공간에 진하게 묻어나면서도 젊음의 활력과 사색하는 문화 콘텐츠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으로 변신하자 완주를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삼례책마을은 지난 추억을 소환하며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1950년대 지어진 양곡창고를 개조한 건물은 녹슨 철판으로 외관을 꾸며 창고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건물 앞에는 넓은 잔디가 펼쳐졌고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배롱나무에는 자홍색 붉은 꽃이 아직 한창이다. 물결치는 책모양 조형물이 신기한지 선생님 손잡고 나들이 나온 유치원생들은 잔디를 마음껏 뛰어다닌다.

국어교과서

 

 

북하우스 계단 쉼터

2016년 8월 문을 연 삼례책마을은 고서점, 헌책방, 북카페로 꾸민 오른쪽 북하우스를 중심으로 한국학아카이브, 전시와 강연 시설을 갖춘 북갤러리, 삼례책마을센터, 책박물관으로 구성됐다. 양식창고에서 지식창고로 변신하면서 세미나, 전시회, 음악 공연, 북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북하우스 출입문 위에 걸터앉은 어린왕자가 머플러 휘날리며 여행자를 반갑게 맞는다. 안으로 들어서자 추억 돋우는 책들이 즐비하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고서와 헌책이 무려 10만권이 넘는단다. 입구부터 철수와 영희가 등장하는 1960년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와 1950년대 어린이 잡지 ‘새벗’에서 발행한 엽서 등 희귀 자료가 눈길을 사로잡으며 어린 시절로 이끈다.

 

북하우스 고서

 

최승희 포스터

 

군정청 포스터

낡은 종이냄새가 코를 자극하지만 책장은 정갈하다. 폭넓은 나무계단이 잘 꾸며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푹 빠져들 수 있겠다. 책장을 따라 빛바랜 다양한 포스터도 늘어섰다.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최승희 공연 포스터가 재미있다. 오른쪽 하단을 비워 공연 때마다 바뀌는 장소와 시간을 적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남는 쌀을 팔읍시다’라고 적힌 군정청 포스터도 눈에 띈다. 안쪽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추억의 LP를 만난다. 남인수 앨범 ‘꼬집힌 풋사랑’부터 ‘키스 인 더 다크(Kiss in the dark)’로 1970년대 후반을 풍미한 일본 여성 듀오 ‘핑크 레이디(Pink Lady)’까지 다양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들도 마련돼 있다.

남인수 앨범

 

핑크레이디 앨범

 

문자의 바다 전시

책박물관에서는 ‘문자의 바다-파피루스부터 타자기까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기원전 3세기 콥트어가 적힌 파피루스 조각과 물소 뼈에 새긴 바탁족의 문자 같은 진귀한 유물 186종 2775점을 연말까지 선보인다. 기원전 16세기 이전에 제작된 인디언 스톤에는 버펄로를 사냥하는 인디언 모습이 그림문자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림책 미술관 아기요정

 

그림책 미술관 전경

#요정과 함께 떠나는 동화나라 그림책미술관

 

올해 삼례책마을에 식구가 늘었다. 지난봄 문을 연 그림책미술관이다. 북하우스에서 삼례성당 입구를 지나 200m 정도 걸어가자 책 모양의 대리석 조형물 위에 앉은 파란색 아기 요정이 손가락을 빨고 있다. 반대쪽 아기 요정은 손등에 올린 나비를 자랑한다. 역시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북하우스에서는 실물 책을 만나지만 이곳은 미술관 자체가 그림책으로 변신하는 공간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곳곳에 조형작품으로 배치해 책을 읽는 기분으로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게 꾸몄다. 특히 세계문화사적 가치가 높은 그림책과 그림책의 원화 작품을 수집, 연구,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그림책 특화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림책 미술관 날으는 요정

 

그림책 미술관 계단 쉼터

 

현재 개관 기념전으로 ‘요정과 마법의 숲(Nursery Versere)’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1940년대 영국 동화작가 G 그레이브스의 작품으로 그의 친필 원고와 아일랜드 그림책 작가 나오미 헤더의 원화가 최초로 공개됐다. 원고와 원화들은 1940년경에 완성됐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그동안 잊혔던 작품이다.

 

1층과 2층을 연결한 어울림 계단에는 그림책 원화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조형작품이 곳곳에 배치돼 동화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보랏빛 옷으로 치장한 요정은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사내아이는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옆에 나란히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상념의 시간을 가져 본다.

 

그림책 미술관 ‘요정과 마법의 숲’ 등장인물 조형물

 

월터 크레인 작품

 

버섯 모양 집, 하늘을 나는 요정, 무당벌레 아줌마 등 동화 속 주인공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요정과 마법의 숲’ 에 등장하는 다양한 삽화를 벽화에도 담았다. 2층에서는 상설전시 ‘빅토리아시대 그림책 3대 거장전’을 만난다. 19세기 후반 세계 그림책 역사에 영원히 남을 걸작들을 탄생시킨 랜돌프 칼데콧, 케이트 그린어웨이, 월터 크레인의 그림책, 원화, 친필 편지 등이 전시 중이다. 


완주=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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