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매개로 현대인과 소통하는 김용일 작가의 열세 번째 개인전이 20~24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소박한 순간의 가치’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생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사이 무수한 삶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추억의 집, 일상의 집과 마주할 수 있다. ‘낮의 이야기’ 시리즈인 <지산>, <숭산리>, <오남마을> 등 대표작뿐 아니라, ‘밤의 이야기’ 시리즈인 <병산리_달빛>, <송하네집_설밥>, <월평마을_설밥> 등 모두 30여 점의 신작이 선보인다. 전시장 1층(낮의 이야기·아크릴화)과 지하 1층(밤의 이야기·목탄화)에 각각 전시되며, 작품 감상의 편의를 위해 물리적으로 나누어진 공간을 나눈 뒤 작품의 시차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김 작가는 “나의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라며 “행복한 기억이 그곳에 있었고, 나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 서로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모든 이에게 ‘행복’을 선물하고자 하는데 작업의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김 작가의 작업에 대해 “달빛에 새겨 설밥에 녹인 만단정화(萬端情話)”라며 “<병산리_달빛>은 거대한 배롱나무가 만개한 마을을 그린 것이고, <송하네 집_설밥>은 한겨울 눈 소복이 쌓인 마을 일부를 옮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목탄 작업은 하나같이 타자의 평안을 불러오는, 누군가에겐 향수로, 어떤 이에겐 막연한 위안을 주는 시각예술재료를 분먹(粉墨)처럼 활용한 사례”라고 평했다. 특히 “작품에서 엿보이는 달이 놓인 풍경,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달자리 풍경은 은은한 달빛을 통한 채움과 비움의 관계를 잘 증명한다”며 “달로부터 뻗어져 화면에 먹처럼 번지는 ‘달빛’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전파하는 만단정화(萬端情話)의 시원(始原)”이라고 강조했다.


홍 평론가의 해석처럼 김 작가에게 ‘달빛’은 ‘설밥’과 더불어 이야기의 근원이다. 달은 희미하게 묘사되고 점유 공간부터 화면 크기에 비해 매우 작지만, ‘달빛’의 들이쉬고 내뱉는 숨은 그의 작업에서 ‘밤의 이야기’(작가는 이를 ‘달빛 이야기’라 칭한다)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설날에 오는 눈을 뜻하는 ‘설밥’은 옛사람들에게 길조(吉兆)였다. 정월 초하루에 눈이 내리면 강년(康年·곡식이 잘 자라고 잘 여물어 평년보다 수확이 많은 해)일 것이라 생각했다. ‘서설(瑞雪·상서로운 눈)’로도 불린 이유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을 통해 ‘설날을 기다리며 설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과 설날에 내리는 함박눈을 통해 모든 이들의 집안에 풍요로움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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