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지구촌 주류 문화로 우뚝
정쟁 몰두 국회, 국격 떨어뜨려
반성하고 정치 혁신에 매진해야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1984년 ‘왜 한국 무대를 놔두고 외국에서만 활동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느껴진다.
백범 김구는 한국이 독립한 뒤 문화강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백범일지’에는 문화의 기능과 중요성에 대한 그의 탁견이 잘 녹아 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인류가 불행한 이유는 인의와 자비,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김구와 백남준이 꿈꾼 문화강국이 현실이 됐다. 한국 문화는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따라 하는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더 이상 지구촌 변방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한류 전사들의 성취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고,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는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미국 할리우드를 뒤집어 놓았다. 또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세계인의 최고 사랑을 받는 드라마로 우뚝 섰다.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세계 문화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코리안 인베이전’(Korean invasion·한국의 침공)은 우리 국민에겐 자부심을, 세계인에겐 행복감을 선사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거라고 예상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류의 선전은 한민족의 창의력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국가 정책이 시너지를 낸 결과다. 일본 문화상품을 베끼기 바빴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른 문화 잠식을 걱정했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한류의 성공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일류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영국 브랜드 평가기관 브랜드 파이낸스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올해 11위로 1년 새 세 단계나 뛰어올랐다고 발표했다. 소프트 파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국력을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칭하는 하드 파워와 매력 있는 문화, 정의로운 외교정책, 모범적인 정신적 가치(도덕·사회규범·윤리·민주주의·정치)를 포함하는 소프트 파워로 구분한다.
나이는 지난 10월 “한국은 문화에 대한 소프트 파워가 잘 갖춰진, 세계에서 가장 모범 사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강한 소프트 파워는 국가와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여 하드 파워인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관광객이 몰려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소프트 파워를 더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게 최선이다. 우리 나라는 정의로운 외교정책 부문이 미흡한 게 사실이다. 대외공적개발원조(ODA)와 유엔평화유지군(PKO) 파견 등 국제사회 공헌도가 다른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친다. 국제사회의 원조로 곤궁했던 시절을 버티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한 남침을 막아낸 나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받은 것을 갚기 위해서라도 개발원조와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3류 정치가 소프트 파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는 국격 하락의 주범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동물 국회, 식물 국회, 막말 국회, 놀먹 국회 등 온갖 오명을 얻고도 반성은커녕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에만 몰두한다. 진영 간 대립을 조장해 국민을 둘로 갈라놓는다. 대선 후보들까지 정책과 비전 대결보다 네거티브 경쟁에 치중하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정치와 다른 분야의 발달 불일치가 한국만큼 심한 나라가 또 있을까.
국민의 정치 불신은 최악이다. 정치 혁신이 절실한 때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더 도약하려면 정치 수준의 업그레이드는 필수다. 정치 한류가 꽃필 수 있도록 국회의원들부터 각성하고 분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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