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헬스장보다 저희 쪽이 중년 이용자가 적고 젊은 분들이 많아요.”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헬스장을 다니려고 여러 곳 상담을 받던 중 한 곳에서 들은 말이다. 영업용 발언으로 이 말이 나온 걸 보면 그동안 꽤 먹히는 전략이었던 것 같다. 20∼30대 직장인을 주로 겨냥하는 곳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용자 연령대를 콕 집어 홍보하는 것이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다. 나이듦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는 게 좀 각박했달까.
기억 속 이 일화를 소환한 건 최근 화제가 된 ‘노(No) 중년존’ 논란 때문이다. 경기도 한 캠핑장에서 ‘40대 이상 커플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갑론을박이 일었다. 나이 때문에 예약을 거부당한 이는 “젊은 분들이 오는 분위기라 안 맞는다고 해 빈정이 상했다”고 하고, 업주는 “중년 고객 외에도 남녀혼성팀, 여성 5인 이상팀, 남성팀을 받지 않는다. 고성방가, 과음 문제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커플·여성전용’ 콘셉트로 잡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켜보는 이들은 “차별과 혐오이자 갈라치기다”는 반응과 “업주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엇갈렸다.
노 중년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노 키즈존’에서 시작된 차별과 배제의 문화가 낳은 비극적 결말로만 생각했다. 주요 고객이 아니거나 만만한 계층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로 여겨져 불편했다. 앞으로 수많은 ‘노 OO존’이 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어서다. ‘어울릴 사람을 택할 자유’가 과대 대표되면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지수가 수직 하락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노 교수존’까지 보며 생각이 확장됐다. 모든 ‘노 OO존’에 차별과 혐오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노 교수존의 실체는 부산대 인근 술집에서 교수 신분을 강조하며 행패를 부린 손님이 잇달아 등장하자 “정규직 교수님들은 출입을 삼가 달라”는 안내문을 내건 것이었다. 위 캠핑장의 경우도 숙박업소라는 특성과 업주의 영업 철학에 따라 과음과 소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손님을 골라 받은 것인데, 이를 덮어놓고 ‘혐오몰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지난 8일 부산대 교수협의회 측에서 “모든 교수를 일반화해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라”고 연락해 와 결국 안내문이 내려진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명예는 정말 그 안내문 때문에 실추된 걸까. 가게 사장은 “교수 갑질에 대해 신고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교수 사회에서도 서로 주의하자는 움직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노 OO존’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어권 차원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차별과 혐오를 논할 때는 발언 내용뿐 아니라 발화자와 청자의 사회적 지위, 역학관계, 상황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누구에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노 교수존은 한 달 만에 사라졌지만 노 키즈존은 여전히 많다. 이 현실은 무엇을 뜻할까. 누군가를 배제하는 트렌드가 각박하다며 혀를 차는 것을 넘어 왜 어떤 ‘노 OO존’은 더욱 생명력이 긴지, 더욱 쉽게 공론화가 되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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