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제재는 위헌 역풍 우려… 다시 손질해야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외국에 서버가 있는 텔레그램에 비밀 채팅방을 열어서 성착취 영상을 판매한 것도 그렇지만, 그 피해자 중에 적지 않은 미성년자가 포함돼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최근에는 ‘n번방 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뜨겁다. n번방 사건과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n번방 방지법이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인지의 여부에 대해 날카로운 견해 대립이 있고, 심지어 대선 후보 간에도 그 정당성 여부에 대해 날 선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n번방 방지법이란 n번방과 유사한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을 포함한다. 그중에서 논란의 핵심에 선 것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에게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방지 조치, 기술·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에 최근 네이버나 다음 등의 인터넷 사업자들은 불법 영상에 대한 필터링이 불가피하게 됐고, 이에 따라 인터넷 이용자들이 검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허가나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언론에 대한 ‘사전억제의 금지’ 원칙에 따른 것이다.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어떤 의견이라도 자유롭게 공표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사전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언론의 자유도 공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지만, 이는 사후적 제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이며, 이는 선진 외국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로 보기 위해서는, 첫째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둘째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셋째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넷째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의 네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방송사업자 또는 영화사업자 등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19금’ 등의 방송제한, 관람제한은 합헌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인터넷 사업자에 의한 필터링은 이미 올려진 동영상에 대해 사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을 올리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면 사전검열로 볼 소지가 작지 않다. 비록 허가를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는 없지만 동영상을 올리는 것 자체를 사실상 차단하는 것이 되고, 필터링을 소홀히 한 사업자에 대해 법적 제재가 가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동영상을 올린 이후 필터링한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사전검열은 아닐 수 있지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 아닌지가 문제된다. 정작 n번방 사건에서 문제됐던 텔레그램 등의 외국계 서버에 대한 규제는 하지 못하면서 국내의 인터넷사업자에 대해서만 규제를 가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단체 채팅방을 무차별적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도 그렇다. 더욱이 인공지능(AI) 등의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걸러진 동영상을 자동 삭제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AI 등에 기본권의 제한을 전적으로 맡겨 버린다는 것은 현행법상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I 등에 의해 걸러진 동영상은 사람이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무리 n번방 방지법의 목적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에 맞는 합리적 수단이 아닌 경우에는 기본권의 과도한 제한이 되며, 위헌성을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n번방 방지법이 민식이법처럼 초기에는 공감을 얻었으나, 나중에는 비판의 대상이 될 경우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제재는 오히려 위헌이라는 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n번방 방지법을 다시 손질하는 것은 정치적 힘겨루기의 문제가 아닌, 본질에 충실한 입법의 과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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