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장애인 이동권법 통과됐는데, 그들은 왜 시위를 계속하나 [이슈+]

입력 : 2022-03-30 06:00:00 수정 : 2022-03-30 07:01: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이동권 예산 확보'를 요구하며 출근길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이미 약속이 완료됐다.”

 

지난 27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미 합의가 끝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탈 시설지원 등을 위해 지하철 타는 시민을 볼모로 잡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전장연이) 여론이 안 좋아지니까 윤석열 당선인,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을 만나면 시위를 중단하겠다는데 우리는 이미 송석준 의원을 담당자로 지정해서 입법도 했고 법 통과도 시켰다”며 자신들은 약속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주장처럼 법을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전장연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소속 임의자 의원과 김도식 인수위원을 만나서도 예산 문제를 포함한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저상버스 도입, 장애인 콜택시 확대 등에 대한 법이 통과됐지만 국비 지원 등을 명시하지 않아 현실적인 변화가 없다는 게 전장연 측의 주장이다. 전장연은 예산을 확보하려면 기획재정부가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당선인, 안 위원장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이유도 기재부를 움직이려면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산 지원 의무 아닌 교통약자법…장애인 콜택시 확대 어려워

 

실제로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보면, 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과 관련 예산 지원 조항은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으로 돼 있다. 이 대표가 약속하고 통과시켰다는 법안이다.

 

국비 지원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장애인 관련 예산은 지자체가 집행해야 하는데, 많은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인수위 사회문화복지분과 임이자 간사와 김도식 인수위원이 29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내 서울교통공사 경복궁영업사업소 회의실에서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국민의힘과 면담에서 관련 법안 통과를 요청했던 변재원 전장연 전 정책국장은 “다른 문제를 제쳐놓고 장애인 이동 문제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려는 지자체 드물다”며 “개정안이 통과됐어도, 갈 길은 멀다”고 말했다.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 법정대수가 정해져 있지만 그조차도 채우지 못한 지자체가 많고 법정대수 역시 실제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법정대수 기준은 장애인 150명당 1대로, 장애인을 수송하기에도 모자라는데, 이용객 중에는 장애인이 아닌 노인이나 임산부 등 다른 교통약자들도 있다. 지자체 중에는 예산 부족으로 차를 확보해두고도 이를 운행할 기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상버스 등 장애인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도입 ‘거북이걸음’

 

이 대표는 최근 통과된 교통약자법에 포함된 저상버스 도입 확대에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도입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노후화된 버스를 대·폐차할 때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하게끔 되어 있는데, 국토교통부의 추산으로는 앞으로 버스가 폐차할 때마다 저상버스로 바꾸는 데는 10년 가까이 걸린다. 현재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를 밑돌고 있다. 이마저도 대부분 서울이고, 지방에서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타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변 전 국장은 “장애인들은 애초에 저상버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외출한다”며 “일례로 충남 지역의 경우 저상버스 도입률이 10%대인데 어떻게 저상버스를 타겠나. 콜택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콜택시는 불러도 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도, 이를 요구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한 이후 본격화됐다. 그 사이 몇 차례의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아직도 서울 시내 21개의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과 시민단체가 지난 28일 서울 3호선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출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현실 바꾸려면 당선인의 의지 중요”

 

장애인 단체들은 결국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재부가 움직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아무리 장애인 법안을 만들어도 기재부가 예산을 배당해주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인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것도 기재부를 움직이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정치 공방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상버스라든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대수 자체가 필요한 수보다 지나치게 낮은 상황인데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이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우리 사회 시스템이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만들어졌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장애인이다.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전장연은 29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 환승 구간에서 투쟁 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30일부터 출근길 시위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신 인수위의 답변을 받을 때까지 삭발 투쟁을 이어갈 방침이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