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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청와대, 너무 높이 있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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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23 23:40:33 수정 : 2022-06-13 21: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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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게 통제된 성역이었던 靑
문고리 득세·불통 등 오점 남겨
무겁고 어둡던 문 개방… 큰 호응
무소불위 권력도 국민에 돌려주길

청와대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넓은 경내에 120여종의 나무 숲이 있고 60여종의 문화재, 잘 가꾸어진 정원…. 그동안 청와대는 너무 호사스럽고, 크고, 강하고, 높고, 때론 음습하고 무섭기까지 하였다. 국민 위에 군림하여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미국의 백악관, 영국의 다우닝가, 프랑스의 엘리제궁이 모두 시내에 자리 잡아 일반인들에 개방된 관광명소인 데 비해, 우리의 청와대는 인근의 통행제한, 고도제한, 건축제한, 입산제한 등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성역이었다. 장안에서 높은 건물을 지을 때는 푸른 청기와가 보이지 않도록 창문설계를 해야 했다.

전 국토연구원장 소설가

청와대란 어떤 곳인가? 한양은 바깥 쪽의 외사산(外四山: 북한산·관악산·용마산·덕양산)과 안쪽의 내사산(內四山: 인왕산·낙산·남산·북악산)으로 겹겹 둘러싸인 분지에 성곽을 두르고 만든 도읍이었다. 풍수설에 의하면 주산인 북악산으로부터 뻗어나온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를 양쪽에 끼고 있는 가랑이 사이의 혈(穴)이 바로 명당이다. 이 터에 경복궁을 짓고 뒤에 후원을 조성하였는데 그 자리가 청와대인 것이다.

1988년 자문회의 관계로 나는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일제 때의 총독관저를 리모델한 것으로, 2층짜리 작고 남루한 가옥이었다. 이 초라한 곳이 우리나라 권력의 심장부란 사실은 믿기지 않았다.

지금의 청와대는 너무나 다르다. 대통령이 비서 몇 명과 같이 쓰는 본관은 웅장하고 장중하다. 민중화가 그림과 통혁당 간부의 서화로 장식한 입구 홀은 행사 때 말고는 차라리 적막하다. 1년에 몇 번 쓰는 국무회의실과 대통령 집무실은 내가 본 바로는 정말 높고 크다. 비서실장 이하 비서관들이 있는 위민관은 500m 거리에 떨어져 있고, 기자들이 있는 춘추관은 이보다 두 배 더 떨어져 있다. 대통령은 홀로 격리된 형상이다. 소통과는 거리가 먼 구중궁궐(九重宮闕)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21세기위원회와 만남 자리에서 자신이 다섯 번이나 변장을 하고 청와대 탈출을 시도했다가 경호원들의 제지로 미수에 그쳤다는 일화를 소개한 기억이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에 다가가기도 쉽지 않지만, 대통령도 국민과 단절되어 있다.

청와대 경내는 7만7000평(약 25만4000㎡). 그 밖에 효자동 인근의 건물과 부지를 사들여 안가, 체육시설, 부대기관, 관저, 경호시설 등이 들어서, 지금은 그 일대가 청와대촌을 형성하고 있다. 경내만 해도 백악관 부지의 3.6배, 일본 수상부(首相府)의 5.9배, 중국 주석궁의 8.5배이다. 청와대는 왕조시대의 왕궁 수준이다.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이곳이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영국 총리실인데 18세기의 소박한 타운하우스다. 어느 기자의 취재일지를 보면, 책상을 맞대고 일하는 총리와 비서실 직원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2층의 내각회의실은 21평(약 70㎡)으로 너무 작아서 장관들이 앉으면 서로 어깨가 맞닿을 정도이다. 총리관저는 고작 50평. 너무 작아서 가족수가 많은 캐머런 총리, 블레어 총리는 그곳에 살지도 않았다.

청와대는 면적만 큰 것이 아니라 식구수도 괄목할 만하다. 그동안 조직을 대폭 늘리고, 직급을 올려서 486명(2020년 기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대통령경호처가 532명이다. 백악관의 비서실은 377명. 영국 총리실은 200명 정도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청와대는 크고 호화판이었다. 지붕 위에 산이 있고 산 위에 뜬 구름이었다.

독재는 외로움에서 싹트고, 주변 사람을 멀리하면 문고리가 득세하는 법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제왕적 대통령이란 소리를 들은 연유는 이 같은 청와대의 구조에도 기인한다. 청와대는 비서실이다. 정부조직법에 의거하여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구이다.

보좌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서실은 대통령의 사(私)조직일 뿐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국정 전반을 관장하고 지휘하고 간섭하고 통제하고 다스려 왔다. 실제 내각은 외무와 국방을 빼곤 전부 세종시로 멀리 쫓겨났고, 북악산 자락에 남은 문고리들이 ‘청와대정부’를 운영해 온 것이다.

국정은 국무위원들이 책임지는 것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의회 청문회를 거친 국무위원들이 결정하고, 국회에 답변하고, 부서(副署)하면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진정한 비서들은 국무위원들이다. 미국의 장관은 ‘시크리터리’(secretary·비서)라고 한다.

청와대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역사의 많은 오점을 남겼다. 새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청와대의 무겁고 어둡던 문을 일반에게 활짝 열어젖혔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청와대 관람신청자가 벌써 400만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왜 이토록 국민들이 환호할까? 그것은 국민들이 오랫동안 청와대란 음지, 권위적 우상화에 짓눌려 왔기 때문일 것이다.

새 정부가 대통령실을 단순히 세종로 1번지에서 용산으로 주소 이전한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직 비서실을 다이어트하였다는 소식도 없고, 내시(內侍)정치의 종언을 알리는 징후도 없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었듯, 청와대의 권력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바란다.


전 국토연구원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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