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줄도산, 은행 추가파산 우려
파장 최소화·선제적 조치 취하길
미국 16위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전격 파산했다. 미 금융당국은 10일 유동성 부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했다. SVB는 총자산 2090억달러로 미 역대 은행파산 중 규모가 두 번째로 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한 지 1년여 만에 벌어진 일인데 금융시장에 공포가 가득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비화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SVB는 정보기술(IT)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에서 IT기업과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하며 40년간 성장해왔는데 위기가 불거진 지 불과 44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과거 비싼 값에 사들였던 국채 등 장기채권 210억달러어치를 싼값에 처분, 18억달러의 손실을 낸 게 화근이었다. 이는 주 고객인 IT기업과 스타트업의 뱅크런(대량예금인출)으로 번졌고 다급해진 금융당국이 폐쇄조치를 결정했다. 총 예금 1754억달러 중 86%인 1515억달러가 예금보험대상에서 제외돼 거래기업이 줄도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월가에서는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는 않겠지만 SVB와 유사한 전문은행의 파산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지난 주말 뉴욕증시는 은행주 폭락 속에 급락세를 빚었고 유럽과 아시아증시도 요동쳤다. 국제금융가는 13일 블랙먼데이(검은 월요일)급 충격이 현실화할 것이라며 좌불안석이다.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 금융당국도 SVB 파산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뜩이나 올 들어 무역·경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환율급등·주가급락 등 금융불안도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경제·금융수장들은 어제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SVB사태가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 국내은행들은 SVB와 실리콘밸리와 직접 관련이 없고 채권투자비중이 크지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국내금융회사도 채권 등 투자손실로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말란 법이 없다.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고 환율폭등과 주가폭락의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다. 정부는 국내외 금융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 금융권 전반에 걸쳐 자산 건전성과 유동성을 점검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응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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