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영화관 상영횟수 전체 0.007% 불과
영화관 관계자 “정부 정책적 지원 필요”
청각장애인 10명 중 3명가량은 1년간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장애인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장애인도 똑같이 영화를 볼 권리가 법에 보장돼 있지만 부족한 지원 탓에 문화 소외 현상은 여전하다.
31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장애인 동시관람 상영시스템 시범상영관 운영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청각장애인 중 ‘지난 1년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 없다’는 응답이 29.2%에 달했다. 비장애인은 15.4%로 절반 수준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21조는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등에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가치봄 영화’(한국 영화에 화면 음성해설과 한글자막을 덧붙인 영화)인데 상영 횟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 영진위에 따르면 국내 3대 영화관(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이 지난해 상영한 가치봄 영화는 전체 상영 횟수(534만7227회) 중 단 419회(0.007%)에 불과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가치봄 영화가 상영된 지난 23일 청각장애인 박준수(33)씨는 “가치봄 영화로 상영하지 않아서 못 본 영화가 너무 많다”며 “농인은 눈으로 보는 게 중요해서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비장애인으로 가치봄 상영을 처음 접했다는 권다빈(31)씨는 “영화 초반에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점점 자막과 해설이 내가 영화에서 놓칠 수 있는 걸 알려주는 느낌이 들었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이런 상영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장애인 영화 관람권은) 영화업계 이해관계자와 장애인단체가 함께 논의해가야 하는 문제”라며 “극장의 힘만으로는 가치봄 상영을 늘리거나 동시상영 장비를 구비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정부가 관련 예산을 늘려주는 등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치봄 영화 비중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는 아직 법적 다툼 중이다. 시·청각 장애인들이 대형 영화관에 대해 제기한 차별 구제소송에서 2심 법원은 ‘300석 이상 좌석 수를 가진 상영관은 주말을 포함해 전체 상영횟수의 3%만큼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영화관 3사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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