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축적된 공공데이터 활용 입장
환경단체 “데이터 충분한지 의구심”
1980년 도입된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 제도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개발로부터 환경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다른 하나는 원활한 개발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최후의 보루로서 환경영향평가에 주목한다면 자연스레 제도 강화를, 걸림돌로 바라본다면 완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근 윤석열정부가 규제 개선에 공을 들이는 가운데 환경부도 보조를 맞추기 위해 꺼내 든 게 바로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 카드’다. “경직된 제도의 유연성 제고”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전문가·환경단체들 사이에선 우려가 크다.
환경부는 내년 환경영향평가 제도에 중점·간이 평가 절차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모든 사업이 동일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게 아니라 각 사업의 환경영향 정도에 따라 평가 절차를 달리하기 위해서다. 일명 ‘맞춤형 평가체계’를 꾸리겠다는 것이다.
환경영향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중점 평가를, 영향이 작을 경우 간이 평가를 거치도록 한다는 건데 우려가 나오는 건 바로 이 간이 평가다. 11일 공개된 환경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간이 평가의 경우 평가서 작성·협의절차가 생략된다.
환경부는 이 간이 평가 절차가 도입될 경우 현재 환경영향평가 대상인 사업 중 최대 10%가 그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을 때 전체 환경영향평가 중 5∼10% 정도가 간이 평가를 받게 되는 거로 나왔다”며 “간이 평가 대상 사업은 평가서 대신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고 당국 검토를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환경영향이 작다면 간소화된 절차를 밟도록 한다는 게 일견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 또한 “그간 ‘이런 것도 평가를 받아야 하냐’는 원성이 계속 있었고 그 대안으로 간이 평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가 되는 건 결국 ‘기준’이다. 어떤 방법으로 미리 환경영향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그간에 축적된 공공데이터를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에선 그 데이터 축적 정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 팀장은 “맞춤형 평가체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운용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가 환경영향에 대한 데이터가 그만큼 충분하냐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어느 사업에 대해 간이 평가 적용 여부를 판단할 만큼의 데이터가 없다면 일반 평가를 받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이 평가 도입을 골자로 하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은 지난 5월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상정됐고 조만간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를 거칠 예정이다. 오창석 환노위 수석전문위원은 이 개정안 검토보고를 통해 “(사업이) 간이 평가 대상으로 분류되는 경우 실질적 평가가 생략돼 환경영향평가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분명 시대 변화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제도 또한 변화가 필요하나 무분별한 완화는 본래 목적만 퇴색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강은주 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은 “환경영향평가제도 내 규제가 내실화 또는 현실화라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며 “규제가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사전 예방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정책으로 특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