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또 혁신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21일 회의를 열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발의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라고 한다. 법안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권 등 막강한 권한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공인중개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직역 이기주의만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법안은 임의단체인 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격상하고 협회에 회원 윤리 의무 위반에 대한 페널티 처분과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 장관, 시·도지사가 가진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권을 위탁받는다는 얘기다. 개업공인중개사의 협회 가입도 의무화한다. 중개수수료를 할인해 주는 개별 공인중개사를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명목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된다. ‘직방’이나 ‘다방’, ‘호갱노노’처럼 중개수수료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받는 플랫폼이 제재 대상에 오를 공산이 크다. 내년 4·10총선을 앞두고 50만명에 이르는 공인중개사를 의식해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가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혁신 기업을 도태시킨 사례를 익히 봐 왔다. 2020년 3월 여객자동차 운송 플랫폼 사업 제도화를 명분으로 밀어붙인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2018년 출시된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시중 여론을 선도한다는 택시업계 눈치를 본 정치권이 인기영합주의로 밀어붙인 것이다. 2013년 국내에 진출했다가 업계 반발과 당국 규제로 철수한 미국 차량예약 서비스 ‘우버’를 대체할 혁신 서비스는 그렇게 고사했다.
혁신 제품이나 서비스와 기존 업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로톡’, ‘강남언니’, ‘닥터나우’ 같은 변호사의뢰, 미용의료, 비대면 의료서비스 플랫폼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은 그 갈등을 최소화하고 혁신의 싹을 잘 키워가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이를 무시한 채 정치권이 ‘타다 금지법’을 밀어붙였다가 관련자들이 4년 만에 모두 무죄를 받은 게 얼마 전이다.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 중에는 스스로 반성문을 쓰기까지 했다. 정치권은 혁신기업을 없애버리는 근시안적 입법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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