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약탈당한 유물’ ‘자국 영해’ 주장하며 인양 계획 발표
국유 선박의 경우 타국 영해서 침몰했어도 ‘주권면제’ 경우 있어
콜롬비아 정부가 300년 전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 ‘산호세’호 탐사 작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수조원 상당 유물이 실린 것으로 전해지는 이 배의 소유권을 두고 최소 3개국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 볼리비아 정부는 배에 실린 유물이 식민지 시절 볼리비아에서 수탈당한 것이라며 유물 인양 계획까지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인양 이후 법원 판단으로 주인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어 산호세의 최종 주인이 누가될지 주목된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보도를 보면 콜롬비아 정부가 카르타헤나 앞바다 해저 900m에서 침몰한 채 발견된 산호세호 주변 해역을 ‘고고학적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고 원격 센서와 잠수 로봇 등을 활용한 1차 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018년 미국 민간 기업과 소유권 분쟁으로 인양을 포기했던 콜롬비아 정부가 탐사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유물 인양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1차 탐사에서는 침몰 현장의 상세한 이미지를 확보하고 이곳에 가라앉아 있는 고고학적 유물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 후속 탐사를 위한 기반을 닦는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어질 2차 탐사에서는 산호세호의 잔해에서 고고학적 유물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탐사에는 ‘산호세호의 심장을 향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후안 다비드 코레아 콜롬비아 문화부 장관은 이번 탐사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산호세호 소유권 문제는 간단치 않다. 이 배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1683∼1746년)의 함대에 속해있던 범선이다. 1708년 6월 볼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약 25㎞ 떨어진 해상에서 영국 함대와 전투를 벌이다 침몰했고, 600명의 선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산호세호에는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약탈한 200t가량의 금과 은, 에메랄드 등이 실려 있었다.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페루나 당시 스페인의 다른 식민지들도 소유권을 주장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보물의 현재 가치는 약 200억달러(약 27조2500억원)로 추산된다.
산호세호 보물 쟁탈전은 40여년 전에 시작됐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인양업체 시서치아르마다(Sea Search Armada, SSA)는 1981년 산호세호 침몰 지역을 찾았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와 SSA는 1980년대만 해도 산호세호의 소유권을 나눠 갖기로 했으나 배분 비율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다. 2011년 미국 법원이 산호세호 소유권이 콜롬비아 정부에 귀속된다고 판결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스페인이 등장했다. 2015년 콜롬비아 정부가 “사상 최대의 발견”이라며 산호세호 발견 사실을 공식 발표한 뒤에는 스페인 정부가 소유권 분쟁에 뛰어들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가 왕위 계승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남미 식민지에서 모은 금은보화이고, 이 배가 스페인 함대 소속이었던 만큼 소유권이 스페인 정부에 귀속된다는 주장이었다.
2001년 만들어진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 보호협약은 최소 100년간 수중에 있는 문화적 역사적 또는 고고학적 성격을 지닌 인류의 모든 흔적을 ‘수중문화유산’으로 규정하고 이를 상업적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협약은 ‘주권면제’ 조항을 두고 있는데 군함이나 정부 운영 선박처럼 국가 소유의 배에 대해 다른 나라가 영해라는 이유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일례로 2009년 스페인 군함 ‘메르세데스’호 사건이 있다. 미국 보물 탐사 회사 오디세이 마린 익스플로레이션은 1804년 포르투갈 서부 해상에서 침몰한 스페인 군함 메르세데스를 발견하고, 2007년 그 안에 있던 17t의 동전을 인양해 가져갔다. 하지만 이후 50만개에 달하는 동전과 유물을 스페인 정부에 돌려줘야 했다. 오디세이 측은 난파선이 공해에서 발견됐으니 소유권이 자신들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법원은 선박에 실린 화물과 동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한 적 없고 이는 국가 유산의 일부라고 주장한 스페인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편 콜롬비아는 국제 표준을 준수하고 유네스코에 난파선 인양에 대한 계획을 보고해야 하는 유엔 해양법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협약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난파선 보물의 소유권은 국제법에 따라 당사국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발견된 난파선의 선주가 따로 있더라도 발굴된 지점이 다른 나라의 해역에 포함되면, 소유권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유엔(UN) 문화기구는 콜롬비아 정부에 산호세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유네스코의 한 수중 문화유산 보호 전문가 단체 역시 서한을 통해 “콜롬비아가 역사적 가치가 아닌 판매를 위해 보물을 인양하는 것은 중요한 유산의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문화유산의 상업적 이용을 허용하는 것은 특히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 협약에 명시된 최고의 과학적 기준과 국제적 윤리 원칙에 어긋난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를 의식한 콜롬비아 정부는 산호세호의 경제적 가치보다 고고학적 가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후안 다비드 코레아 콜롬비아 문화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과의 회담 후 “이것은 보물이 아니라 고고학적 난파선”이라며 “우리가 수중 고고학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가 될 기회”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산호세호에 실린 보물이 남미 식민지에서 약탈한 것이라는 점이 스페인에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탈당한 유물은 원래 소유했던 나라에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지속해서 국제사회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호세호는 3세기가 넘는 식민지 통치 기간 콜롬비아 해안을 따라 침몰한 1000척 이상의 배 중 하나로 추정된다. 특히 이 배는 이 해안에 수장된 배 중 가장 많은 양의 귀중품을 운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파선의 성배(the holy grail of shipwrecks)’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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