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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에… 승진에… 기분좋은 퇴근길 덮친 비극

입력 : 2024-07-03 06:00:00 수정 : 2024-07-02 22: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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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참사 안타까운 사연

뺑소니로 시력 잃고도 공직 입문
‘딸 바보’ 50대 시청 공무원 날벼락
전보 앞둔 같은 은행 동료 4명 등
30대∼50대까지 9명 참변 당해

직원 두 명 숨진 서울시청 ‘비통’
대형병원 주차직원 3명도 참변
빈소엔 유족·지인들 통곡 소리
국화꽃 든 시민들 추모 이어져

일순간에 꿈과 희망이 스러졌다. 막을 수도, 피할 겨를도 없었다.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한 차량이 역주행 후 인도를 덮치면서 사망한 9명 대부분은 가족과 동료의 사랑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희생자 중에는 승진의 단꿈에 젖은 은행원도 있었고, ‘딸바보’ 공무원도 있었다. 이들의 주검이 옮겨진 장례식장은 눈물바다였고, 일터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누군가가 사고 현장에 놓은 국화는 안타까운 듯 빗물에 떨어져 나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2일 서울 시청역 교차로 인근을 시민들이 분주하게 지나는 가운데 전날 밤 교통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전날 밤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한 차량이 역주행 후 인도를 덮쳐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남정탁 기자

한 시중은행 부지점장급 직원이었던 사망자 박모(42)씨는 사고 당일 발표된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승진 명단에 올랐다. 다음날 다른 센터 발령이 결정된 박씨는 직장 선배 3명과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선배 중 1명도 다른 지점 센터장으로 전보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승진과 전보에 대해 축하와 격려를 서로에게 건넸을 이들은 사고 현장 인근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변을 당했다. 박씨를 포함한 3명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모(52)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

지난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대기 중이던 차량 블랙박스에 기록된 사고 상황. 경찰 관계자는 "70대 남성 운전자가 신호 대기하는 보행자들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상황 파악 중으로, 사상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수상 소식을 들은 당일 목숨을 잃은 시청 직원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서울시 청사운영1팀장 김모(52)씨는 동료 직원들과 인근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야근하기 위해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 변을 당했다. 김씨가 속한 청사운영1팀이 ‘이달의 우수팀’과 ‘동행매력협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서울광장 이태원참사 분향소 이전과 도서관 행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데 기여한 공로에 따른 수상이었다.

 

김씨는 중학생 때 뺑소니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9급 세무직으로 입직한 김씨는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면서 행정직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과거 탈세 추적 업무를 맡았을 때는 KBS TV 프로그램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 여러 차례 출연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김씨에 대해 “청사운영1팀의 경우 청사 방호요원 등 관리하는 인원이 200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을 단합하고 독려하며 일했던 분”이라며 “업무 특성상 주말에도 자주 출근하곤 했다”고 전했다. 평소 두 딸을 끔찍이 아끼는 딸바보로도 불렸다.

 

2일 오전 전날 시청역 교차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로 숨진 피해자들이 이송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 장례식장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와 함께 식사한 시청 공무원 윤모(31)씨 또한 유명을 달리했다. 윤씨는 2020년 7급 공채로 입직한 촉망받는 젊은 공무원이었다. 다른 사망자 3명은 서울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주차관리 직원으로 파악됐다. 이들 3명 역시 함께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은 2일 황망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과 지인들의 통곡소리로 가득했다. 이날 오전 갑작스런 폭우를 뚫고 장례식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유가족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은 간밤에 급하게 나온 듯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연신 마른세수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중년 여성은 “믿을 수 없다”고 수차례 외치며 장례식장 벽을 붙잡고 오열했다. 숨진 은행 직원의 노모는 “우리 XX 불쌍해서 어떡하느냐”며 “어멍 아방 두고 어떻게 먼저 가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동료를 잃은 서울시청과 모 은행 또한 종일 비통한 분위기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숨진 공무원 2명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앞날이 창창한 젊은 직원이 불의의 사고로 떠나게 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평소 출퇴근할 때 사고가 난 길에서 버스를 탄다는 한 서울시 직원은 “어젯밤에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탄식했다. 동료의 빈소를 찾은 은행 직원은 “사고 현장이 직원 모두 자주 가고 아는 곳이다 보니 단체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며 “다들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도에 설치된 분리대가 완전히 파괴되어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경찰 관계자는 "70대 남성 운전자가 신호 대기하는 보행자들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상황 파악 중으로, 사상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시민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사고 현장 인근,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가드레일에는 “고인들의 꿈이 저승에서 이뤄지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몇몇 시민은 고인들을 기리는 국화 꽃다발을 놓고 가기도 했다. 사고 현장은 전날 밤의 흔적이 여전히 역력했다. 일부 구간에는 충격으로 뽑힌 철제 가드레일 대신 임시 펜스가 세워져 있었다. 가해 차량이 직접 돌진한 일부 상점은 사고의 여파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깨진 유리창을 보수하는 매장도 보였다.

 

사고를 낸 차모(68)씨는 현재 경기 안산시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시내버스 기사로, 운전 경력이 40여년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차씨는 사고 현장에서 도주를 시도하지 않았고, 음주나 마약 흔적도 검출되지 않았다.


백준무·윤솔·이예림·김주영·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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