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총 10대기업 15년 새 8곳 바뀔 때
韓은 3곳만 교체… 더딘 혁신속도 방증
지배구조도 아시아 8위 머물러 ‘낙후’
2024년 초 밸류업 발표 이후 코스피 18.3% ↑
배당 강화 등 밸류업 참여 기업들 감세
‘거수기’ 사외이사 개편·전자투표 의무화
‘주가 발목’ 대주주 상속세율 인하·폐지
엄격 상장폐지로 좀비기업도 걸러내야
최근 10년간 일본 닛케이지수는 297% 상승했지만, 코스피는 고작 61% 올랐다. 100만원을 일본 닛케이지수 상승에 투자했다면 300만원 가까운 이익을 얻었겠지만, 코스피에 걸었다면 160만원 정도만 얻었다는 얘기다. 우리 자본시장이 좀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 저평가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 적용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증시에서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세계일보가 16일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2024 세계증권포럼’에선 한국 증시 밸류업을 위해서는 수익성 제고, 주주환원 강화,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밸류업 계획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기업을 위한 인센티브 정책은 물론이고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세제 및 법 제도 개편도 필요하다고 포럼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전근대적인 지배구조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고, 상장 폐지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국 증시 저평가 이유는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실증 분석을 통해 한국 증시의 저평가 원인을 수익성 둔화와 낮은 주주환원, 낙후된 지배구조와 기관투자자 수요 부족 등으로 제시했다. 실증 분석에 따르면 2022년 한국 기업의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EBITDA)은 197조원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의 EBITDA는 약 4550조원으로 13%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미 기업 간 순이익 배수 차이도 23배로 5년 전 15배에 비해 격차가 확대됐다.
이 같은 수익성 격차는 ‘기업 혁신’에서 비롯됐다. 최근 15년 사이 미국 상장법인 중 시가총액 순위 10대 기업을 살펴보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단 2곳만 남긴 채 바뀌었다. 15년 전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단 2곳이었지만 올해 들어선 두 회사와 외에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TSMC 등 7곳이나 된다. 지난 15년간 한국 증시 시총 1위는 삼성전자가 굳건히 지켰고, 새로 10위 안에 들어온 기업은 SK하이닉스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단 3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SK와 삼성이라는 거대 그룹 소속 2개 기업이 포함된 만큼 국내 산업계에서 기업 혁신이 얼마나 더딘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도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는 지난해 역내 국가 중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순위를 8위로 평가했다. 호주(1위)와 일본(2위), 싱가포르(3위)는 물론이고 대만(4위)이나 말레이시아(5위)보다 낮은 결과다.
이 실장은 “이사회의 실질 기능 회복, 상장회사의 모범적인 지배구조 이행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3년 후 코스피 5000 도달하려면
성숙한 증시는 기업 성장을 위한 자본 공급을 원활하게 돕는다. 부진한 기업 혁신과 성장률 정체에 놓여 있는 한국으로서는 개선이 필요한 인프라인 셈이다. 윤석열정부는 이를 위해 밸류업 정책에 참여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한편 밸류업 지수와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개발 등을 추진 중이다. 단기간으로 볼 때는 일정 부분 성과가 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월17일 윤석열정부의 밸류업 방안 발표 이 지난 5일까지 코스피는 18.3% 올라 같은 기간 닛케이(15.3%), 미국 다우산업(5.7%), 중국 상하이종합(4.1%)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또 5월 말 이후 7월 초까지 밸류업 자율 공시에 나선 기업의 주가는 평균 4.6% 올랐다.
기반을 닦은 만큼 세제 개편 및 법·제도 개선과 같은 중장기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실장은 우선 일반 투자자 대상 적용 세제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증권거래세나 양도소득세 중 하나만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배당소득세는 분리과세로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진단했다. 최대 60%에 이르는 대주주 상속세율은 인하나 폐지가 바람직하며, 주주환원 시 법인세 감세 등 기업 참여를 위한 유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전자투표 및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앞서 증거 공개 및 공유 절차)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른바 ‘거수기’ 사외이사 제도 개편과 같이 법과 제도 외 가이드라인 개편을 통해 문화를 바꾸는 연성규범을 통한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상장폐지를 강화하는 방안도 기업 밸류업을 위해 필요하다는 게 이 실장의 제안이다. 지난해 기업공개(IPO)로 상장한 기업들의 시초가 대비 수익률은 -32.38%에 그쳤다. 이 기간 코스피 수익률이 27.98%인 것과 크게 대조된다. ‘고평가’ 상장에만 관심을 쏟은 뒤 기업 경영에는 소홀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 실장은 “한국은 상장기업 대비 퇴출 비중이 작아 ‘좀비 기업’(영업이익으로 금융 이자를 못 갚는 부실기업) 증가에 따른 주가 부진 개연성이 상존한다”며 “상장폐지 사유 발생 요건을 확대해 좀비 기업의 퇴출을 촉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 상장기업 임원 보수를 중장기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연동해 이들이 주가 상승에 각별한 신경을 쓰도록 유도하는 방안, 유망 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 등도 밸류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이 실장은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