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가 공개됐을 때 배우 주지훈에게 처음 쏟아진 질문은 “망가지는 역할을 왜 선택했는가”였다. 이 영화에서 주지훈은 돈부터 밝히고 경박한 견인차 기사 조박을 연기한다. 주지훈은 빼어난 신체조건 때문에 멋스러움이 먼저 떠오르는 배우다. 외모, 인간성 모두 볼품 없는 조박은 의외의 선택으로 보인다. ‘탈출’의 김태곤 감독 역시 “주지훈 배우는 젠틀하고 멋있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감독들은 (멋진 배우를) 망가뜨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며 “멀쩡한 사람을 날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 때 관객이 느끼는 쾌감처럼 감독도 그런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 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은 오히려 “망가졌다는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대본을 보고 감독·작가와 얘기하면서 인물의 대사톤이나 외모를 구체화하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게 외부에서 보기에 소위 ‘망가짐’일 수 있다”며 “전 그런 걸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고 ‘이 대본을 갖고 그렸더니 이게 나왔으면 해야지’ 이런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그가 외형을 만드는 데 참고한 인물은 어릴 때 본 ‘가스 배달하는 형들, 주유소에서 일하고 학교 안 나오는 형들’이다. 주지훈은 “그 형들이 청소년기에 자아발현의 욕구가 과해서 미용실 갈 돈 없으니 맥주로 머리를 감고 했다”며 “조박은 돈을 아끼는 친구이니 귀찮아서 머리를 길렀을 것 같고 공짜라서 주유소 점퍼를 입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팝콘 무비라서 (선택)했는데, 팝콘 무비로서 매력이 있어서 좋다”며 “점수를 준다면, 팝콘 무비로서는 90점”이라고 평가했다. 본인의 연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시사회에서 내 연기를 보면 (땀이 나서) 겨드랑이가 다 젖는다”며 “스스로 연기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사람이 있나”라고 말했다.
‘탈출’은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이선균의 유작이다. 주지훈은 이선균에 대해 “연기에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조금 더 학자적”이라며 “극적 허용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선균이 형은 ‘그러면 말이 안 되잖아’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만큼 개연성을 중시한다”고 회상했다.
‘탈출’은 비슷한 시기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가장 관객 반응이 좋지 않다. 최근 영화시장이 양극화된 상황에서 배우들로서는 흥행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인터뷰 당시는 개봉 성적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이지훈은 흥행 여부에 대해 “기본적으로 최고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며 “목표한다고 되지도 않고, 결국 관객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고가 아니어도 상관 없는 거지, 최고가 아닌 걸 추구한다는 건 아니에요.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흥행했는데 좋은 작품이 있고, 흥행했어도 작품은 별로일 수도 있고, 흥행 안 되도 좋은 작품도 있어요. 그건 외부에서 평가하는 거잖아요. 제가 좋은 배우로 평가받고 싶으면, 작품이 좋든 연기가 좋든 결국 보는 사람이 좋은 배우라고 얘기해줘야 해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잘했냐 아니냐는 완벽히 타인의 몫이라 생각해요. 제가 하는 판단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죠.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소리를 들었으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개선하면 되니까요. 최선을 다하지 않아놓고 바랄 수는 없잖아요.”
주지훈은 2006년 드라마 ‘궁’으로 데뷔해 연기 경력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요즘 ‘궁’ 출연 당시 자신을 보면 “아들 같다”고 한다. “제가 아버지와 22살 차이 나는데, ‘궁’ 촬영할 때 24살이라 지금과 21살 차이니 당연하다”고. 그러면서 “이제 깨달았다. 실제 그때 연기를 못했는데 시청자들이 사랑해줬다”며 “‘궁’ 때 제가 고등학생에 서툰 첫사랑 역할이라 그 푸릇푸릇함을 사랑해주신 것 같다. 제가 요즘 거리에 학생이 지나가면 불러다가 아이스크림 사주고 싶어지는데, 그런 느낌이었나보다”라고 돌아봤다.
여유 시간에 만나는 이들의 과반수 이상이 제작자, 감독, 작가라는 그는 작품 제작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오컬트와 역사 액션 드라마 두 편을 준비 중이다. 대본 작업 후 제작사 등에 보여주는 단계. 그가 맡은 역할은 제작, 출연, 시나리오 참여다.
불혹을 지난 그는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해 “지금만큼은 아니라해도 나이 들어도 쓰여질 역할이 충분히 있는 게 이 직업의 장점 같다”고 말했다. 다만 “다음 역할이 너무 좋은데 120㎏으로 찌워야 하면 당뇨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인게 현실”이라며 “몸이 쇠약해져 하고 싶은 배역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게 고민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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