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ARF서 대좌…'러 군수산업 지원' 美 제재에 왕이 "단호한 조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이 27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양자 회담을 하고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한 현안과 함께 양자 문제를 논의했다.
양국 장관은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견해차를 노출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AP·AFP·로이터·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날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왕 주임과 별도로 대좌해 최근 대만 등과 관련된 중국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양국 간·지역적·세계적 핵심 사안들에 대해 개방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나눴다"면서도 양측이 대부분의 사안에서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5월 라이칭더 대만 총통 취임 당시 중국군이 '대만 포위훈련'을 실시한 것 등을 포함해 최근 중국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이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우리의 비전을 우리 동맹국·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진전시킬 것"이라면서 "우리와 우리 동맹국·파트너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인권을 포함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왕 주임은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며 "'대만 독립' 세력이 도발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반격해 '대만 독립'을 위한 공간을 계속 줄여나감으로써 완전한 통일 목표를 향해 노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왕 주임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며 "과거에도 (독립된) 국가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결코 국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양국 외교수장은 애초 약 1시간 동안 회담할 예정이었지만, 대만 문제로 대화가 길어지면서 회담은 약 1시간 20분이 걸렸다.
미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모든 대화에서 대만은 그들(중국 측)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였다"면서 "그들은 이를 중국 내부 사안으로 봤다. 따라서 그(왕 주임)는 항상 대만에 대해 할 말이 제법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지난 몇 달 동안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을 상대로 저지른 긴장을 고조시키고 불법적인 행동"을 비롯해 "안정을 저해하는 행동"을 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국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블링컨 장관은 대만 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면서 "세컨드 토마스 숄(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을 포함한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불안정한 행동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국제법에 따른 항행 및 비행의 자유 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다만 최근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암초에 대한 필리핀의 물자 보급과 관련해 합의하고 실제로 이행한 데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왕 주임과 회의에 앞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들과 회의에서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서 (필리핀의) 성공적인 물자 보급 소식을 접하게 돼 기쁘다"면서 "우리는 이에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 계속되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1일 중국과 필리핀은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상주하는 필리핀군 병력에 대한 물자 보급과 관련해 잠정 합의를 맺었다.
또 이날 필리핀은 중국의 방해 없이 이 암초에 물자를 무사히 보급해 그간 필리핀과 중국의 최대 분쟁 지역이었던 이곳을 둘러싼 긴장이 상당히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미중 관계와 관련, 왕 주임에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양국 관계 안정의 중요성 그리고 규범 기반의 질서를 옹호해야 한다는 점을 믿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외교를 통해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논의하며 미국 및 전 세계 국민에게 중요한 협력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국무부가 전했다.
이어 합성 마약의 미국 유입 차단 및 군(軍)간 소통 강화를 위한 중국의 최근 조치를 인정하면서 미중 정상 회담에서의 약속에 대한 지속적 이행을 촉구했다.
또 "미국이 인권을 포함해 미국 및 동맹·파트너 국가의 이익 및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중국에서 부당하게 구금되거나 출금 금지된 미국 시민의 사례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왕 주임은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달성한 합의사항을 진지하게 이행하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중국 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중 견제와 탄압은 멈추지 않고 더 강화됐다"면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자신의 패권 논리로 중국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이 아니며 미국이 되려는 생각도 없다"며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중국의 러시아 군수산업 기반 지원을 거론하며 "중국이 이를 시정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적절한 조치를 계속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왕 주임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을 설명한 뒤 미국을 향해 "일방적인 제재와 확대 관할법(long-arm jurisdiction) 행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확대 관할법'이란 미국 국내법에서 재판관할권을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으로 확대 적용하는 규정이다.
왕 주임은 이어 "자국 이익과 정당한 권리 수호를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전용 가능한 이중용도 품목을 러시아로 수출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돕고 있다고 의심하며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데 대해 중국이 반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블링컨 장관은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대해 논의했으며 가자지구 전쟁의 휴전 협정을 조속히 타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과 왕 주임은 미중 관계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양국간 열린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국무부가 밝혔다.
중국 외교부도 "양국 정상이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달성한 중요한 공감대를 더욱 충실히 이행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참석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그와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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