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 과시욕 경멸하는 유럽선 찾기 힘들어
하늘을 향해 높은 건물을 짓는 경쟁이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높이 300m가 넘는 건물이 전 세계에 236채 있는데 그 가운데 160채가 2014년 이후에 지어졌다. 게다가 지금도 96채의 건물이 ‘초고층’(Supertall) 클럽의 멤버십을 노리며 지어지는 중이다.
과거에는 하늘을 긁는다는 의미의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 摩天樓)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이제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슈퍼톨이 더 빈번하게 쓰인다. 19세기 말 미국의 뉴욕과 시카고에서 시작된 고층 빌딩의 유행이 마천루의 표현을 낳았고 독일은 아예 구름을 긁는다며 마운루(摩雲樓, Wolkenkratzer)라고 시적으로 불렀지만, 21세기 슈퍼톨은 그냥 “내가 최고야!”라고 외치는 모습이다.
슈퍼톨 빌딩의 지리적 분포는 흥미롭다. 21세기 초고층 건축의 리더는 아메리카가 아니라 서남아시아다. 828m의 높이를 자랑하는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는 현재 세계 최고 빌딩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000m를 초과하는 빌딩을 건설 중이다. 두바이는 이미 31채의 초고층 빌딩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제일 밀도 높은 ‘키다리 도시’다.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사우디는 밀도보다는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하여 열세를 만회하려는 듯하다. 천 미터라면 높은 산의 규모이며, 1km라는 표현은 높이보다는 거리에 적합한 개념이 아닌가!
중국은 1980년 이후에 경제발전 과정에서 초고층 빌딩 경쟁에 돌입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10채 가운데 5채가 중국에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 경제 성장의 상징인 셈이다. 뒤늦게 뛰어들었으나 새로운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고 소리치는 듯 지금 건설 중인 초고층 빌딩의 70%는 중국의 몫이다. 그나마 중앙 정부가 제동을 걸었기에 망정이지 성(省)이나 도시 간 경쟁을 그대로 두었다면 더 많은 초고층 빌딩이 그야말로 우후죽순 뻗어 올라갔을 터다.
부르즈할리파에 이어 세계 2위 고층 빌딩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메르데카 118이 보여주듯 아시아도 높이 경쟁의 한 축이다. 한국의 롯데월드타워, 대만의 타이베이 101,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등도 이미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아시아의 초고층 빌딩들이다. 이들은 이제 국제적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대 도시의 야망을 드러내는 슈퍼톨의 세계에도 예외는 있다. 유럽은 독보적으로 슈퍼톨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대륙이다. 러시아(8채)를 제외한다면 폴란드 바르샤바와 영국의 런던만이 슈퍼톨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유럽에 초고층 빌딩이 이토록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 유럽 경제가 미국이나 중국, 아시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는 현실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유럽이 초고층 빌딩에 대해 갖는 심리적 거부감이나 문화적 인식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은 초고층 빌딩이 미관상 흉측하다는 생각과 촌스럽다는 시각이 강한 듯하다. 무엇이든 과시하려는 졸부나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신흥부자 콤플렉스의 발로라도 되는 듯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자 나라 수십 개가 모여 있는 유럽 대륙 전체가 이처럼 일관되게 슈퍼톨 경쟁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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