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년2개월 만인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하는 엇박자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추는 대신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대출금리를 높이면서 서민·자영업자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 이자 부담이 줄어들기는커녕 은행들이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최고금리는 연 3.35∼3.55%로 집계됐다. 3주 만에 하단이 0.20%포인트, 상단이 0.25%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4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1일 기준 연 4.160∼5.860%로 집계됐다. 3주 만에 하단이 0.280%포인트 상승했다.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7%에 가깝다. 5대 금융그룹의 3분기 합산 순이익이 5조4741억원에 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리 인상이 가팔랐던 2022년 3분기(5조6386억원) 수준에 육박한다. 은행들의 ‘돈 잔치’ 일등공신이 정부여서 씁쓸하다. 오락가락하는 부동산·가계대출 정책이 서민을 옥죄고 은행의 배만 불린 것이다.
디딤돌대출 등 저금리 정책대출 확대가 불쏘시개가 됐다. 게다가 정책대출을 놓고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 간 이견을 보이면서 시장에 혼선을 줬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두 달 늦췄다가 뒤늦게 총량 규제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대출 총량 규제로 연간 목표치를 거의 소진한 은행들이 대출 수요 관리를 위해 가산 금리를 올리는 걸 눈감아줬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은행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건 비정상이다. 이자 부담이 커진 서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한은이 금리 인하로 노린 경기 회복은 요원해졌다.
정부가 각성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을 높이고 은행 금리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금리 산정에서 예금자 편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출자에게 비용을 전가해 이익을 늘린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금융권도 사회적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서민을 위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금리 인하에 따른 혜택을 나눠야 한다. 성과급 잔치에 빠져 있을 게 아니라 업무영역 확대와 경쟁력 제고를 통해 비이자 수익을 확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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