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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전체가 미술관으로… 글로벌 미술 강국 꿈꾸는 카타르

입력 : 2024-11-12 06:00:00 수정 : 2024-11-11 20: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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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술 장르 ‘용광로’ 된 도하
19세기 佛화가 제롬 기획전 맞은편엔
아랍 세계 선도 근현대작품 영구전시
M7서는 중동 첫 美 작가 회고전 열려

아트 밀은 비서구권 대표 박물관 부상
루사일은 세계 최고 동양화 작품 준비
카타르 당국의 미래 내다본 장기 계획

적어도 15∼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구형 텔레비전 수상기 2대가 나란히 놓인 채 다급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파키스탄과 인도가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된다는 내용이다. 파키스탄 방송의 아나운서와 인도 방송의 아나운서가 서로 닮은 화면 속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루지만, 이들은 각각의 TV 속에서 따로 진행할 뿐이다. 파키스탄 작가 바니 아비디의 영상설치작품 ‘뉴스’(2006)다.

자심 알 자이니 ‘발견’

정부 정책에 화가 난 시민들이 불을 질러 까맣게 타버린 건물 앞에서 한 소녀가 줄넘기하며 놀고 있다. 파리다 바툴의 사진작품 ‘라호르시에 어울리는 것은 없다’(2006). 그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정치, 경제적 상황과 여성이 처한 현실 등을 제대로 포착해냈다.

1950∼60년대 건축 양식을 설명하는 영상물도 눈길을 끈다. 당시 모든 양식을 두루 갖춰 대표적 건축물로 꼽히던 카라치 대학의 교정과 건물들을 소개한다.

카타르 도하에 있는 카타르국립박물관(NMoQ)이 마련한 특별전 ‘만자르: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파키스탄 예술과 건축’에서는 200여 점의 회화, 소묘, 사진, 영상, 조각, 설치미술, 태피스트리, 미니어처 등을 통해 파키스탄과 파키스탄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예술을 조명한다. ‘공간’을 의미하는 ‘만자르’는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카타르의 인구는 280만명. 그 가운데 카타르 국적자는 13%에 불과하다. 나머지 250만명이 외국인 노동자들인데,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의 출신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모로코 전통의상. 신부의 혼례복이다.

마타프 아랍현대미술관으로 건너가면 ‘장-레옹 제롬의 예술세계와 영향력(1824∼1904)’이란 주제의 기획전을 만나게 된다. 19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그림들은 동양을 이국적 정취와 관능이 넘쳐나는 곳으로 묘사했다. 프랑스에서는 노예 시장과 하렘, 벌거벗은 여인들의 목욕 장면을 그린 그림이 인기가 높았다. 장 레옹 제롬은 이 같은 장면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묘사했던 프랑스 화가들 가운데 선구자였다.

방대한 양의 오리엔탈리즘 회화 컬렉션과 해외에서 대여해온 작품들로 제롬을 돌아보고 재평가하는 전시다. 3인의 큐레이터가 각각의 섹션을 맡아 제롬이 채용한 예술적 기법을 탐구하고 광범위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을 제안한다. 제롬 생전에 찍힌 사진들, 예술과 객관성, 진정성과 상상력 사이, 현대미술에 남긴 제롬의 유산 등을 이야기한다.

맞은편 전시관은 아랍 세계를 선도하는 근현대작품들을 영구소장하고 있다. 어린 딸아이가 낮에 잠깐 잠이 든 엄마의 얼굴 마스크를 슬쩍 뜯어낸다. 아랍 여성들이 착용하는 ‘바툴라’다. 작가는 아이들이 엄마 얼굴조차 제대로 못 보면서 자라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 자심 알 자이니가 그린 ‘발견’(1995)이 유독 눈에 띈다.

엘스워스 켈리 ‘옐로 커브’

‘눈부신 아틀라스의 장관: 모로코 유산 탐구 여행’ 전은 카타르-모로코 2024 문화의 해를 맞아 개최된 것으로, 이슬람예술박물관(MIA)에서 관람객을 반긴다. 이슬람 모로코 유산의 다양한 면을 세밀히 분석해 모로코 고유의 정체성을 수립한 힘의 원천을 공개한다. 최초로 선을 보이는 유물과 필사본, 도자기, 전통의상, 장신구 등을 통해 모로코의 주요 도시들이 종교, 학문, 과학 발전을 촉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강조한다. 아울러 필수 공예품도 조명한다. 현대 모로코 사진작가 브루노 바비와 무스 람라바트가 촬영한 모로코 풍경과 일상생활 사진도 함께 내걸었다.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 M7에서는 ‘엘스워스 켈리 100년’ 전이 한창이다.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미국 작가의 회고전이다. 전후 파리에서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작가의 초기작부터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말년 작품까지, 세계 유수 기관들이 제공한 60여 점을 풀어놓았다. 온통 하얀 방을 모두 차지한 채, 커다랗고 노란 조각 하나가 누워 있다. 대표작 ‘옐로 커브’(1990)다. 회화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표기하고 건축과 결합한 ‘흰 벽을 위한 회화’(1952)와 ‘스펙트럼 IX’(2014)도 얼굴을 내민다.

사실 ‘만자르: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파키스탄 예술과 건축’ 전은 아트 밀 박물관이 주도해 기획하고 국립박물관은 협력에 일조한 전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8만㎡ 규모의 아트 밀 박물관은 지난 40년 동안 수집해 온 국제 작품들을 선보이며 비서구권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등극할 전망이다. ‘장-레옹 제롬의 예술세계와 영향력’ 전을 공동 주최한 루사일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동양화 작품들을 갖춘 뒤 2030년 알 마하 섬에서 문을 열고 지구촌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할 방침이다.

장-레옹 제롬 ‘베일에 가려진 체르케스 여인’

개관 전부터 이처럼 큰 행사들을 주도하는 것은 카타르 당국의 미래를 내다본 장기계획에 따른 것이다. ‘카타르 뮤지엄즈’(QM)를 먼저 알면 이해가 쉽다. 산하에 이슬람예술박물관, 마타프 아랍현대미술관, 카타르국립박물관, QM갤러리 알 리와크, QM갤러리 카타라, 3-2-1 카타르 올림픽스포츠박물관, 그리고 줄줄이 개관할 다두 카타르어린이박물관, 카타르 자동차박물관, 아트 밀 박물관, 루시밀박물관 등을 두고 있다.

QM은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아미르 국왕이 후원한다. 의장을 맡은 그의 여동생 셰이카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의 주도하에 미래의 해답을 예술과 문화, 교육에서 찾는다. 튀르키예를 포함한 중동 전역과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의 예술과 문화를 아우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술 인재 양성을 위한 세계 아티스트 입주활동 프로그램 ‘파이어 스테이션’도 운영 중이다. 옛 소방서를 개조해 조성했다. M7은 패션과 디자인에 집중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허브다. 다양한 배경과 연령층 사람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시회, 역량 강화, 공개 토론회 등을 개최하고 글로벌 크리에이터들을 연결해준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도하=글·사진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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