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공개 3일 만에 750만 시청 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TOP 10 비영어 영화 부문 3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일본, 브라질 등 58개국에서 TOP 10에 진입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전, 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박찬욱 감독이 공동각본 및 제작을, 김상만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액션, 전쟁 영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영화는 16세기 조선판 사회주의 사상을 외쳤던 정여립의 대동사상 실패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역시 새로운 평등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임진왜란이라는 소재는 그저 배경에 불과할 뿐,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계급 문제인 듯싶다. 신분제가 폐지된 지 오래된 현재도 사실 그러한 문제 제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영화를 보는 동안 16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다양한 이유로 현재와 겹쳐 보였다. 학력, 지역, 자본, 젠더 등으로 인간을 불평등하게 차별하는 세상은 씁쓸하게도 지금까지도 낯익다.
영화에서 불평등한 신분 계급의 정점에 있는 왕 선조는 사악함과 무능력의 환장의 컬래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안위에 조금이라도 방해될 시에는 가차 없이 백성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만큼 간악하고, 시체를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백성들을 동원해서라도 왕권을 세우기 위한 경복궁 재건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현재 정치인들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왜구에 맞서 싸운 백성들을 이용만 하고 버리는 선조는 심지어 왜구의 잔당들을 기용해서 의병대 잔당들을 주살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한다.
“왜놈들하고 붙어 싸운 백성들은 시체를 뜯어먹으면서 연명하는디, 왜놈들하고 붙어먹은 양반들은 갈비를 뜯어가면서 잔치를 벌여 부러야”라는 극중 대사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듯, 선조가 왜구와 붙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모습 역시 친일적인 행태와 언사를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와 오버랩되며, 불평등의 문제가 실은 사악함과 이기심의 문제, 나아가 왜곡된 역사 인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는 아닌가 하고 영화는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평론가는 ‘영화는 종종, 아니 대체로 거의 전부가 모반을 꿈꾼다’고 했다. ‘전, 란’은 우리에게 어떤 모반을 꿈꾸게 하는가.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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