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15일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실상 대통령경호처의 소극적 협조가 있었다.
공수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본(공조수사본부)의 ‘체포 작전’은 이날 오전 3시20분쯤부터 경찰이 배치되며 시작됐다. 공조본은 오전 5시10분 대통령경호처에 영장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집행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민의힘 의원 수십명에게 가로막혔지만 오전 7시33분 1차 저지선을 돌파했다. 7시48분 2차 저지선인 차벽을 우회해 철문과 차벽이 쳐진 3차 저지선 앞에 다다랐다. 8시7분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관저 내부로 들어가 영장 집행과 관련한 협상이 시작됐고, 10시33분 윤 대통령 신병 확보에 성공했다.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경호처의 적극적인 저지는 없었다. 공수처와 실무 협의를 담당하는 소수 경호처 인력만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경호관은 관저 내 대기동에 있거나, 휴가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처 내 강경파인 김성훈 경호처 차장, 이광우 경호본부장 등 지휘부가 영장 집행 저지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경호관들 대부분은 이에 동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3일 1차 체포영장 집행 때 공조본에 격렬히 저항하던 모습과는 차이가 컸다. 당시 경호처 요원과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 병사는 스크럼(인간 방어벽)을 짜고 수사관들의 진입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이후 공조본은 경호처와 국방부에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저지하는 직원들은 현행범 체포한 뒤 경찰서로 분산 호송해 조사한다고 엄포를 놨다. 한편으로 영장 집행에 협조하는 직원은 선처하겠다고 유화책을 펴며 경호처의 힘을 분산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경호처는 표면적으로 강성지도부들이 장악하고 있는 건 맞지만, 수면 아래로 부장급, 과장급에서는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는 제보가 상당히 많았다”면서 “들어온 제보로는 ‘장비를 들라고 하면 들지 말자’, ‘비무장으로 (대응)하자’, ‘스크럼 짜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며 경호처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는 오늘 휴가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우상호 전 의원도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경호처에는 노무현 대통령 때 있던 분도 계시고, 문재인 대통령 때 경호하시던 분들이 꽤 많은데, 그분들 중에 굉장히 국가관이 투철한 분도 있다“며 “여러 가지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이번에는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는다는 게 대개 통설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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