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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분야서 진실로 주장하는 것들
과학적 방법론으로 의심 꼭 필요해
점검·수정 중심 회의주의자 사고법
음모론이 난무하는 시대 의미 커져
유리 겔라 초능력·코로나19 팬데믹
불안·불확실성이 초래한 오류 분석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마이클 셔머 외/ 한국 스켑틱 편집부 엮음/ 바다출판사/ 1만7800원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범람하는 시대, 우리나라에 과학적 회의(懷疑)주의 씨앗을 뿌린 계간지 ‘스켑틱’이 국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사이비 과학은 기승을 떨치고 국정에까지 무속이 침투한 터다. 온갖 분야에서 지식,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타당성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의심하는 회의주의나 합리적 사고의 중요성은 이제 생존법으로 다뤄지는 게 마땅할 정도다. 이에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신경과학자 샘 해리스 등 저명한 과학계 인사가 대거 참여한 스켑틱협회가 발간한 ‘스켑틱’ 한국판이 지난 10년간 쌓은 저작 중 회의주의를 체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글을 모아 펴냈다.

마이클 셔머 외/ 한국 스켑틱 편집부 엮음/ 바다출판사/ 1만7800원

◆초능력자 유리 겔라

1984년 9월23일 KBS 1TV 특집방송 ‘세기의 경이 초능력 유리 겔라 쇼’를 기억하는 이가 많다. 유리 겔라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인증했고 네이처에 관련 논문이 실렸을 만큼 세계가 인정한 초능력자로 통했다. 그가 우리나라 공영방송에 등장해 숟가락을 구부리며 이마에 손을 대고 전국에 초능력을 발산하자 어른과 어린이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따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심지어 유리 겔라가 짧은 방한 기간에 땅굴 탐사에 초빙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세기의 초능력자’ 실체를 드러내려 30여년에 걸쳐 싸운 이가 ‘초능력 사냥꾼’ 제임스 랜디(1928∼2020)다. 무대 마술가 출신으로 “누구라도 좋다. 그 어떤 초자연 현상이라도 내 앞에서 입증한다면 100만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며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주장하는 초능력자 속임수를 줄줄이 밝혀냈다. 더 나아가서 ‘코스모스’ 저자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 등과 함께 ‘초자연적 주장에 대한 과학적 조사위원회(CSICOP)’를 설립해 진정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존경받았다. 한국 스켑틱 편집부는 10주년 베스트 에세이로 스켑틱 편집장 마이클 셔머의 ‘회의주의 선언’ 이하 총 17편의 글을 소개하면서 제임스 랜디 인터뷰와 그가 직접 쓴 글을 포함했다.

무속과 미신에 요동치는 시대, 우리에겐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사고법이 절실하다. 맨위 사진에선 당대 최고 초능력자로서 명성을 누리던 유리 겔라가 1973년 8월1일 미국 TV 프로그램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서 숟가락 구부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스켑틱과 인터뷰에서 랜디는 유리 겔라 실체가 당대 인기 최고 TV프로그램에서 폭로됐던 ‘투나잇 쇼’ 사건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유리 겔라가 출연하기 전날, 감독 중 한 명이 제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방송 동안 마술 트릭을 쓰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며 로스앤젤레스로 저를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전 겔라가 활용할 수 있는 소품을 말해 주었고 그가 트릭을 쓰지 못할 방법들을 알려줬습니다. … 쇼가 시작되었고 겔라는 22분 동안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심리현상·초능력 열풍을 꺾는 상징적 사건이자 전환점이 됐다.

‘진정한 회의주의자’로서 유리 겔라 속임수를 막기 위한 방안을 제작진에게 조언했던 제임스 랜디가 국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유리 겔라의 속임수를 재연하고 있는 모습. 자료 자니 카슨·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캡처

이후 본격적으로 회의주의 운동에 뛰어든 계기에 대해 랜디는 “온갖 터무니없는 주장이 난무하는데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말 화가 나 있었다”고 말했다. 유리 겔라와 오랜 싸움 후에도 독일 연방정부에 수맥 탐지의 과학성 검증을 제안하는 등 사이비 과학과 전쟁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랜디는 사이비 과학을 규탄하는 작업은 끝이 없을 테지만 수많은 과학자와 회의주의자가 계속 노력해서 그러한 현상을 ‘희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왜 음모론에 빠지는가

음모론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올까. 신경심리학자 로버트 D 커벨은 ‘뇌는 패턴을 찾는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의 본성이 자꾸 명백한 무질서에서도 무언가 패턴을 찾으려 하고,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해석을 부과해서 그에 따라 행동을 수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취약성을 설명하면서 커벨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불안이 음모론에 빠지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두려움과 위협 같은 감정이 더해지면, 잘못 인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음모론적 사고를 하는 요건이 갖춰지게 된단다.

회의주의자인 대니얼 록스턴은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과 21세기에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던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팬데믹) 속에서 동일한 음모론 구조를 찾아낸다. 심리학계의 연구 결과 음모론은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지는 전형적 반응이다. 불안과 불확실성, 두려움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음모론적 주장을 대중이 더 쉽고 넓게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실제 뇌 메커니즘을 통해 살펴보면, 인류 진화의 산물인 호기심이나 패턴 인식, 원인과 결과 추론, 이미지화, 상상 등의 인지 능력은 과학을 통해 합리적 사고를 하게 해준다. 그래서 ‘이상한 믿음’은 인간의 보편적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모두 음모론자가 될 수 있고, 오류나 미신에 빠질 수 있다. 데카르트가 숙고 끝에 도달한 가장 확실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회의주의자들은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생각(회의)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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