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계엄·탄핵사태까지 겹쳐 경기 위축 우려가 더욱 커진 마당에도 한은이 금리 인하 카드를 못 꺼내 든 것은 자칫 환율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정치적 변화가 환율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공행진 중인 원·달러 환율이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에 견줘도, 미국 기준금리와의 격차로 봐도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게 이 총재의 진단이다. 이 총재의 우려대로 우리 경기가 침체에 더해 환율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연쇄적으로 소비자 물가까지 밀어올린다. 지난해 12월 수입 물가는 전월보다 2.4% 올랐고, 1년 전보다는 7.0%나 뛰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과자, 음료, 치킨, 생필품, 화장품 등 가격 인상이 도미노처럼 번졌다. 카카오나 팜유, 로부스타 커피 등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의 오름 폭이 컸다. 고환율에 유가마저 꿈틀댈 조짐이다.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에 소비심리가 위축돼 가뜩이나 더뎌진 민생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설 임시공휴일 지정이 반갑지만은 않다는 볼멘소리가 왜 터져 나왔겠는가.
통화·재정정책 간 공조가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이다. 금리 기반의 통화정책만으로는 경제 전반에 온기를 퍼뜨리기가 쉽지 않다. 재정정책이 동반돼야 소비심리를 되살려 내수 부진부터 털어낼 수 있다. 정부가 예산의 조기 집행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작년 10월·11월 연속 금리를 내렸던 한은은 이번에는 숨을 고르고 내달 추가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데, 재정정책과의 협조에 실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무엇보다 ‘리더십 부재’에서 불거진 불확실성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비로소 환율 고삐를 죌 수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조세특례제한법, 반도체 특별법, 전력법 등 민생·경제 관련 법안 통과에도 속도를 내 재정·통화정책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격화될 관세전쟁에서 수출전선을 지킬 우리 기업도 최소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