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일 개막한 제9회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을 통해 정상외교에 분주한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가속화하는 ‘미국 우선주의’ 움직임에 맞서 아시아가 세계 다극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을 접견하며 방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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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선주의’ 맞서 아시아 국가 협력 강조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저녁 아시안게임 개회식에 앞서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손을 맞잡고 각종 안보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 구축을 위해 아시아가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이 패권주의와 일방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맞서 세계 다극화 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특히 이날 시 주석의 발언은 미국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도 관세와 광물 수출 통제 등 보복 조치를 내놓으며 미·중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왔다.
시 주석은 “동계 스포츠의 매력은 열정과 협동에 달려있다”며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함께 나가 공동 발전을 도모하고,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에 끊임없는 동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 세계화’는 미국의 외교 틈새를 파고들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중국의 외교전략이다.
시 주석은 이번 아시안게임의 주제가 ‘얼음과 눈이 함께 꾸는 꿈, 한 마음 아시아’(氷雪同心, 亞洲同心)인 점을 언급하면서 “아시아 사람들의 평화와 발전, 우정에 대한 공통된 바람과 추구를 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빙설 문화와 빙설 경제가 하얼빈의 고품질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과 대외 개방의 새로운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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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과도 면담… 방한 가능성 시사
시 주석은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도 접견했다. 시 주석이 지난해 12월 탄핵 정국 이후 한국의 고위급 인사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시 주석은 올해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계기 방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5시30분(현지시간)쯤 하얼빈 타이양다오호텔에서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방문한 우원식 의장을 만났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 국회의장을 만난 것은 2014년 12월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을 접견한 이후 처음이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애초 15분가량으로 예정됐던 이날 면담은 계획보다 길어진 42분 동안 진행됐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양국 주요 관심사를 서로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회담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면담에서 우 의장에게 “한·중 관계 안정성 유지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국회의장실은 전했다. 또 최근 한국의 계엄·탄핵 정국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내정 문제”라며 “한국인들이 잘 해결할 지혜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시 주석은 또 우 의장이 올해 경주에서 열리는 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해 달라고 요청하자 “에이펙 정상회의에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라며 “관련 부처와 참석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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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중국은 개방과 포용 정책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재차 강조했다. 시 주석은 “그동안 개혁개방과 포용 정책을 견지하며 개혁개방으로 성공한 나라로부터 경험을 배웠다”며 “특히 저장성 당서기 때 한국은 (저장성과) 인구·면적 등에서 비슷하지만 경제력에서 차이가 있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고 국회의장실은 전했다.
우 의장은 한국이 헌법·법률 절차에 따라 계엄·탄핵 정국을 대처해나가고 있다며 한국이 불안정하지 않고, 한국인에게 저력이 있는 만큼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울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투자 후속 협정에서의 성과 도출과 양국 교역 활성화,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 첨단 분야 협력을 기대한다며 중국 측에 한국 기업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업 활동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또 중국의 한국인 대상 비자 면제 조치가 양국 상호 우호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한국도 관련 부처가 중국인의 한국 방문 편의성 확대를 위한 조치를 깊이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 의장은 중국 내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송환 사업에서의 진전을 기대한다는 뜻도 전했다. 시 주석은 이에 몇 년 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협조를 지시한 바 있다며 한국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국회의장실은 설명했다.
우 의장은 자오러지(趙樂際)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격·중국 공식 서열 3위) 초청으로 지난 5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에 머물고 있고, 이날은 동계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하얼빈에서 일정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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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납치’ 잇따르는 태국과도 정상회담
시 주석은 전날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동남아 지역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납치·온라인 사기 범죄조직에 대해 공동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7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을 방문한 패통탄 총리와 만나 “태국이 온라인 도박과 전화·온라인 사기에 맞서기 위해 취한 강력한 조치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또 양국이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 법 집행, 사법 관련 협력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통탄 총리도 “태국 방문객·관광객의 안전은 정부의 최우선 순위”라며 “태국을 지나가는 범죄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할 준비가 됐다”고 화답했다.
최근 태국에서 중국 배우 왕싱 등 유명인을 비롯한 중국인 관광객이 잇따라 납치되면서 중국과 태국에서 우려하는 여론이 확산했다. 범죄조직들은 납치 피해자들을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운영하는 콜센터 같은 대규모 범죄단지로 끌고 가 감금하고 보이스피싱·온라인 사기 등 범죄행위를 강요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단속이 심해지자 치안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미얀마, 캄보디아로 근거지를 옮긴 중국계 범죄조직이다.
이에 태국 경찰과 중국 공안은 조정 센터를 태국 내 여러 곳에 설치하고 상호 공조해 범죄조직 근절을 위해 애쓰기로 했다. 태국 정부는 또 중국계 범죄조직 작업장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미얀마 동부 미야와디 등지에 대한 전력 공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하도록 미얀마 군사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한편 시 주석은 양국 간 새로운 철도 건설 사업을 추진할 의향이 있으며, 전기차 분야와 디지털 경제에서도 협력을 심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100년 만에 전례 없는 변화에 직면해 중국과 태국은 전략적 이익에 대한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서로를 확고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패통탄 총리는 시 주석에게 말레이반도를 관통해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대규모 육상·해상 복합운송로 사업 ‘랜드브리지’ 등의 투자 사업을 제안했다.
지난 4일 태국 내각은 방콕에서 라오스를 거쳐 중국으로 연결되는 약 3400억밧(약 14조6000억원) 규모의 태국-라오스 고속철도 2단계 357㎞ 구간 공사를 승인했다. 이 공사가 끝나면 방콕부터 중국 윈난성 쿤밍까지 고속철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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