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바보로…
인민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이번엔 더 철저히 반대급부 따질 것
안보불안 없도록 美와 공조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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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 (…) 내가 돌아온 것을 그가 반기리라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달 2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2018∼2019년의 드라마를 재연해보자는 ‘러브콜’이었습니다.
평양에서 이 발언을 보고받았을 김 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트럼프 대통령 말마따나 그의 복귀에 흡족해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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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위원장은 속내가 복잡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기억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쓴 장문의 편지입니다.
전·현직 미국 특파원 모임인 한미클럽이 2022년 9월 계간지 한미저널을 통해 공개한 ‘트럼프-김정은 러브레터’ 27통 중 마지막 편지로, 김 위원장은 이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 감정을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 위원장이 직접 밝혔습니다. 한·미 연합훈련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이 편지를 작성한 2019년 8월 5일은 한국과 미국이 2주간의 연합훈련에 돌입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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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판문점 회동을 가진지 두 달 정도 지난 시점으로, 북·미는 실무회담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양국 실무협상을 앞두고 도발적인 연합 군사 훈련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연합훈련이 실시되자 김 위원장은 크게 실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한 회동을 앞둔 시점에 우리가 위협으로 간주하는 전쟁 연습을 벌이는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실무회담 중단을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 하나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편지에서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에게 쌓였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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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해주신 것이 무엇이며, 저는 우리가 만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조치가 완화됐습니까, 우리나라의 대외 환경이 개선됐습니까? 군사 훈련이 중단됐습니까?”
또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이익이 되는 디딤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바보처럼 보이도록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쓰라린 배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할 말이 없다며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토로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고, 북·미 정상회담도 더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핸들을 정반대로 꺾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9월 핵무력을 법제화하더니 2023년 10월에는 아예 헌법에 핵무력 강화 정책을 못 박아버린 것입니다. 비핵화 협상에 더는 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명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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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질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지난해 11월 무장장비전시회 개막식 연설에서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다”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 언제 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정책”이라고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났다며 자신만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은 그 경험 때문에 대화 테이블에 섣불리 앉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회담장에 나가기 전 과거보다 더 확실한 반대급부를 약속받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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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신호에는 반응하지 않고 마치 북·미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을 제시하는 듯한 대미 비난 논평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19년 실무회담 중단의 이유로 들었던 연합훈련을 비난하는 지난달 외무성 담화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 게 눈에 띕니다.
올해 초 치러진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의 이름과 기간을 일일이 거론하며 비판해 북한이 연합훈련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대북 적대적 언행과 남한 내 전략무기 배치 중단을 요구하는 듯한 논평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러 동맹이라는 경제 제재 우회 수단을 확보한 북한이 당분간 시간을 두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 기조를 탐색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안보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정부는 미국과의 대북정책 공조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과거의 경험을 딛고 또 한 번 세계를 들썩이게 할 수 있을지, 두 사람이 벌일 신경전이 우리의 안보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됩니다.
*참고자료
한미클럽, 한미저널 통권 10호
정욱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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